Written by 5:11 오후 116호(2019.04)

교육의 딜레마

한국을 한마디로 설명하면요? ‘교육열!’

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한국의 학생들이 엄청난 경쟁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국의 교육열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합니다. 정치발전소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할 때, 독일 중학생 한 명을 인턴으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열여섯 나이에 머나먼 타국에 인턴을 하러 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습니다만, 한국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니 곧바로 “education fever(교육열)”라고 답하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교육열은 국제적입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보여준 것도 이러한 세태의 단면입니다. 물론 0.1%의 극단적인 사례를 소재로 한 것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경험한 바라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느 정도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초·중·고 학생 7,3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염유식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설문 중 “시험이 어려울까 걱정된다”와 “학교에서 나쁜 성적을 받을까 걱정된다”는 문항에 “매우 그렇다”라고 답변한 집단을 각각 ‘시험 우려집단’과 ‘성적 우려집단’으로 구분했습니다. 성적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비율을 보면, 초등학생은 6명 중 1명, 중학생은 4명 중 1명, 고등학생은 3~4명 중 1명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공부 시간이 가장 깁니다. 중2 학생들은 하루 평균 9시간 52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54분을 공부만 합니다. 하루의 반입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성적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결과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흥미는 굉장히 낮게 나옵니다. 무섭고 재미도 없는 공부를 가장 오래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공부, 학창시절이 끝나는 즉시 손을 놓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비교하면 생산성은 낮지만 나름 선방이라 볼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외국 학생들과의 경쟁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대학 입시가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옆에 친구들은 이제 경쟁자가 됩니다. 어떻게든 주위 친구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이 펼쳐집니다.

2018년에도 사교육비가 늘었습니다. 사교육비 총 규모는 전년보다 4.4%p 증가한 19조 5천억 원이 되었습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7.0%p 상승해 29만 1천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사교육 참여율도 1.7%p 상승한 72.8%를 기록했고, 이는 초·중·고, 일반교과·예체능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학원 안 보내고 싶은데, 안 보내면 친구를 못 사귄다’는 말은 더 이상 ‘도시괴담’이 아닙니다.

요즘 사교육에 돈 쓴다고 흉보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있다 하더라도 학부모들은 할 말이 있습니다. 중앙대 마강래 교수가 2002년 중학생일 때 지출한 사교육비와 2014년 현재의 진학률을 추적 비교한 결과를 보면, 쓴 만큼 거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사교육비 지출 상위 40%에서 성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찔끔 쓰지 말고 화끈하게 써야 성과도 화끈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드는 결과가 아닌가 싶어 우려가 큽니다.

그럼에도 며칠 전 학생들의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몇 년 사이 ‘학생 행복도’가 상승한 수치는 학생들이 학교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더욱 더 학교에 애정을 갖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진보교육감 정책에 대한 긍정 성적표”라는 해석처럼, 분명 혁신교육의 성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로서의 사교육비는 떨어질 줄 모릅니다. 다음에는 왜 우리 학생들이 이렇게 치열한 경쟁에 몰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자료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발표」, 교육부 보도자료, 2019-03-11.

「2018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교육부, 2019.3.

김기헌·안선영·장상수·김미란·최동선, 「아동·청소년의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비교연구」, 여성가족부 발간자료, 2009.

마강래·강은택, 「저출산 문제와 교육 실태: 진단과 대응방안 연구」, 국회예산정책처, 2016.12.

염유식·김경미, 「2018년도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연구 조사결과 보고서」, 한국방정환재단, 2018.05.

윤근혁, 「세계 꼴찌였던 학생 행복도, 최근 4년간 상승세」, <오마이뉴스>, 2019-04-01.

윤근혁, 「“학교가 좋아요”… 한국 학생 행복도 부쩍 높아진 이유」, <오마이뉴스>, 2019-04-10.

이주호,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한국인의 역량과 교육 개혁』, 한국경제연구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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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