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08 오후 116호(2019.04)

청년, 미래를 꿈꾸다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박선아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농경제 08)

최근 나는 진로 고민에 휩싸여 있다. 대학원생에게 진로 고민이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겹쳐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되곤 한다.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3분의 1이 우울증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모두 나와 같은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나도 몇 개월 전 약간의 우울증을 진단받아 그들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환경 분야는 마치 달리는 기차처럼 느껴진다. 이미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을 만큼 환경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책수단도 사람들의 인식도 더디다. 이러한 환경 분야 공부의 장점이자 단점은 연구가 실천과 긴밀하게 결부되어있다는 것이다. 실천성이 강조되다 보니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가 별로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에너지전환이 우리 사회 곳곳, 즉 노동계, 농업, 이해관계의 구조, 자본의 편성, 문화와 인식 등과 어떤 접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합의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다. 나는 이런 부분들을 다루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에 멀리 가고 싶었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최근에 나는 나의 삶의 태도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구체성’이다. 자기만족적인 폐쇄적인 구체성이 아니라, 전체 구조로 연결되는 접점들을 채워가는 구체성이다. 내가 답을 찾을 때 종종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는데, ‘구체성’이라는 답을 얻을 때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영향을 주었다.

첫 번째는 논문의 저자들이다. 한 사람의 여러 논문을 읽다보면 그 사람과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든다. 이전에는 논문의 결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한 줄의 결론을 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관심이 더 크다. 단순히 고생을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그럴싸한 설명이 아닌, 왜 이 설명만이 진실에 가까운지를 논하기 위해 깐깐하게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논문들은 그 연구자들의 노고가 선히 눈에 보이면서 감정이입이 되기도 한다. 엄밀하게 검토된 연구들은 시간이 지나고 패러다임이 변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며, 우리는 이를 고전이라고 부른다. 고전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명제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지식으로 쌓여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사람들은 선배 연구자들이다. 세미나 자리에서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데도 열정적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을 만나곤 한다. 수많은 토론회에 발표를 하러다닐 정도로 내공과 명성이 있음에도, 공부를 절대 게을리 하지 않는다.

조금 더디어 보이지만 그렇게 긴 세월동안 노력하는 것만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아직 많은 내용이 여물지 못한 채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나의 시도들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웬만큼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지나간 지점들에서 아마 내가 찾던 해답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후배들이다. 요즘 후배들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미 한 명의 프리랜서이자 사회인처럼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며칠 전에는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아직 졸업을 2학기 남긴 대학생이지만, 그 친구는 이미 많은 환경 관련 사안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최근에는 공학계열 대학생들이 신재생에너지에 관한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를 연구하고 있다고 해서 사실 굉장히 반가웠다. 자기의 자리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관해 구체적인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것을 효력을 잃은 것으로 평가하고 개인은 파편화되었다고 진단한다. 큰 틀에서는 시대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아닐까?

누군가는 너무 구체적인 것에 집중해서 확산 가능성이 없는 일에 빠져들기도 하며,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을 거대 담론의 시기를 기다린다. 그 둘을 변증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벽돌처럼 쌓아야겠다는 작지만 큰 목표를 세워본다. 옛날 사람들부터 지금의 청년들까지 모두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느리게, 구체적으로, 더 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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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_ 농생대 농경제사회학부 08학번.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퍼실리테이터 클럽 대표를 하면서 사람 중심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늘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2468nice@gmail.com)

Last modified: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