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36 오전 116호(2019.04)

우리 들꽃 이야기

복수초(福壽草), 그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최성호 (아시아 산림협력기구 프로젝트 매니저, 산림자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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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내 용
식물명복수초(福壽草)
학명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분류쌍떡잎식물강 > 미나리아재비목 > 미나리아재비과 > 복수초속
꽃말동양-영원한 행복, 서양-슬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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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페이스북에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그룹을 이끌어 온 지도 어언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재까지 원조 식물 동아리 그룹으로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들과 함께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생태를 관찰하며 배워가는 중이다.

우리 자생식물에 대해 알아가면서 식물명의 유래에 대한 궁금한 한층 더 커져만 갔다. 그것이 품고 있는 의의와 내용이 중요함에도 연구가 방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열정으로 똘똘 뭉친 몇몇 사람이 의기투합했다. 우리나라의 식물에 대해 정리한 최초의 식물도감으로 현재 우리가 부르는 식물명의 주요 뼈대를 형성한 조선식물향명집을 읽고 그에 대한 설명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국 식물명의 유래’라는 기존의 책이 있었기에 쉬울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우리 식물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근 4년 동안 낮에는 각자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조선식물향명집을 탐독하면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거듭하며 책의 내용을 가다듬어 나갔다.

조선식물향명집 1944종의 식물 중에서 저자들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유달리 애정을 쏟은 식물은 바로 복수초와 깽깽이풀이다. 우리 고전부터 관련 자료를 수없이 찾아 헤맸건만 입맛에 딱 맞는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동안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복수초의 유래를 펼쳐보고자 한다.

복수초는 봄꽃의 전령사로 알려진 대표적인 꽃 중의 하나이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10∼20cm 정도이고 잎은 깃꼴로 잘게 갈라진다. 1월 말부터 4월 초순에 3∼4㎝ 크기의 황색 꽃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피며 열매는 수과(瘦果)로 익는다. 배수가 잘되는 부식질 토양에서 잘 자라고 꽃이 지고 나면 나무 그늘에서도 잘 생장한다.

복수초는 1937년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 최초로 기록된 이름으로 한자어 福壽草(복수초)에서 유래하였다. 처음 이름을 접하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복수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한자로 복 복(福), 목숨 수(壽), 풀 초(草)라고 쓰고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식물지(2018)는 중국명 ‘側金盏花’(측금잔화)의 이명으로 福寿草(fu shou cao)를 사용하고 있고 일본도 福寿草(フクジュソウ)를 사용하므로 한·중·일에서 공통으로 ‘福壽草’(복수초)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문헌의 기록을 살펴보면, 일본은 마쓰에 시게요리(松江重頼)가 저술한 모취초(毛吹草, 1645)에서 복수초가 최초로 발견되는 반면 한국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중국은 현대실용중약(现代实用中药, 1956)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일본에서 사용되던 이름이 20세기 초중엽에 한국과 중국에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1932)에 조선명으로 기록한 雪蓮花(설련화)는 물명고 및 연경재전집에 ‘雪蓮, 雪蓮臺’(설련, 설련대)라는 이름으로 보이지만 외국에서 전래된 洋菊(양국)에 대해 기술한 것이고, 19세기 중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중국명 側金盞花(측금잔화)를 기록한 것이 보이나 접시꽃(黃蜀葵)에 대한 이름이어서 복수초와는 관련이 없다.

그동안 복수초를 언급한 우리 고전 문헌이 발견되지 않아 애를 태우던 찰나, 복수초로 추정되는 식물이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집필한 고산유고(孤山遺稿)에서 발견되었다. 이 기록을 발견한 순간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661년 함경도 삼수지역에 유배 중이던 윤선도는 초봄에 노란색으로 설빙 속에서 핀 꽃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관찰기록과 시를 남겼다. 그 꽃은 하나의 뿌리와 하나의 줄기에 하나의 꽃잎을 달고 있으며, 줄기는 길이가 2치쯤 되고, 꽃잎은 크기가 금전화(金錢花)와 석죽화(石竹花) 같으며 색은 황금빛이었다. 그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혹자는 민간에서 소빙화(消氷花)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 내용에 비추어 해당 식물은 복수초로 추정된다.

삼월 초이튿날 서산에 해 지는 때 / 暮春初二日西斜

홀로 좁은 방에 앉아 고향 집 생각하는데 / 獨坐蝸廬憶舊家

나무꾼이 홀연히 황옥의 꽃을 만나 / 樵客忽逢黃玉蕊

통에 담아 와서 내초에게 자랑하네 / 蒔筒來向傖人誇

소빙화가 압록강 언저리에 돋아났나니 / 消氷花在鴨江潯

짧디 짧은 줄기 하나 바늘처럼 가늘어라 / 短短單莖細似針

일천 자 눈 속에서 살기를 몰아내고 / 千尺雪中排殺氣

한 떨기 꽃잎 안에 천심을 보듬었네 / 一錢葩裏保天心

옥황상제 뜰 앞에서 자라나야 제격인데 / 端宜玉帝庭前植

못가에서 읊조리는 시인과 어이 짝했는가 / 底伴騷人澤畔吟

봄소식을 관새 밖에 부쳐 주어 알리려는 / 春信寄傳關塞外

동군의 세심한 배려를 비로소 알겠도다 / 東君用意始知深

옥관의 봄 저물어도 봄 경치 없었는데 / 玉關春暮無春物

그래도 소빙화 한 가지가 있었구나 / 猶有消氷花一枝

음이 성하면 감소하는 복괘의 이치 진실되고 / 陰盛自移誠復理

양이 쇠하면 생장하는 희역(羲易)의 말씀 신실해라 / 陽衰已長信羲辭

혼명한 세상에 빛나는 선니의 일월이라면 / 宣尼日月昏冥世

숙살의 시절에 불어오는 명도의 춘풍일세 / 明道春風肅殺時

이 꽃으로 천지의 대덕을 유추할 수 있어 / 因小可能推大德

몇 번이고 향내 맡으며 거듭 탄식하노매라 / 馨香三嗅重嗟咨

일천 숲 죽어 서 있고 일만 뿌리 숨은 때에 / 千林死立萬根藏

여리디 여린 옥 꽃술 혼자서 향기 내뿜네 / 獨自夭夭玉蕊香

호걸은 문왕을 굳이 기다리지 않는 법 / 不待文王豪傑也

닭 소리 그치지 않아도 마음을 상하리오 / 雞鳴不已又何傷

소빙화(消氷花)는 얼음을 녹이는(삭이는) 꽃이라는 뜻으로 현재 강원도에서 발견되는 방언 ‘얼음새출’ 및 함경도 방언 ‘얼음꽃’과 뜻이 비슷하고, 북한에서 이명으로 기록한 ‘얼음새기꽃’과 뜻이 정확히 일치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얼음새출, 얼음꽃 또는 얼음새기꽃은 복수초를 지칭하는 우리말로, 최근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제 민간에서 구전되어 온 이름으로 보인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만약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윤선도의 문헌 기록을 알았다면, 민간에서 쓰이던 ‘얼음새기꽃’을 조선식물향명집에 국명으로 채록하고 그것이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으로 채택되어 복수초라는 이름 대신 사용되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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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페이스북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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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_서울대학교 산림환경전공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에서 근무중이다. 페이스북 그룹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방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덕으로 품어 안는 성격으로, 업무를 추진할 때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 아시아산림협력기구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발전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꿈이 있다. (quercus1@hanmail.net)

Last modified: 2022-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