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6:24 오후 117호(2019.07)

여는글

‘기억에 남는 역사’에서 ‘퍼뜨리기 좋은 역사’로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김상진 추모제를 앞두고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사에 대한 토크 콘서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김상진 열사가 누군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딱딱한 강연회보다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김상진 열사를 스토리텔링하면 좋을 것 같아 형님께 부탁드립니다.”

2016년, 김상진 열사 제41 주기 추모식을 며칠 앞두고 정근우 회장으로부터 영상제작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김상진의 삶과 죽음 그리고 한국민주주의」였다.

제작기간이 너무 짧아 급했다. 화성에 살 때, 종종 딸아이하고 수원역 근처로 나들이를 가곤 했다. 어느 핸가 수원캠퍼스로 들어가 사진도 찍고, 부녀간의 대화로 4월을 누린 적이 있다. 진달래, 목련, 버드나무가 흐드러지게 생명을 뽐내고 있었다.

아이를 느티나무 아래 열사 할복 의거 장소로 데려갔다.

“이게 무슨 표지석이에요?”

“1970년대 중반에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할복·자결한 김상진 열사의 의거 장소란다. 딱 너만 한 나이를 살고 세상을 떠난 한 젊은이의 삶과 죽음, 옳고 그름, 염치와 몰염치의 시대를 갈라친 경계점이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어떻게 저런 세상 헤아림이 가능했을까? 열사의 삶이 새삼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딸아이와의 캠퍼스 나들이를 모티브로 ‘김상진 2016’을 설계·제작했다. 해마다 조금씩 상황을 반영하여 2019 버전까지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열사는 내 인식의 틀 안에서 점점 구체화되었다. 사랑을 노래한 청년이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였고, 미래를 여는 ’바른 침‘이었다.

윤동주님이나 전태일님처럼 앞서 가신 모든 분들의 희생의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지금’이다. 지금은 영상으로 사물을 헤아리는 시대다. 돌아가시는 순간의 ‘육성’까지 남겨주신 현실적이고 처절한 역사를 우리가 단편적으로 흘려보내고 소비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지금 우리들의 곁에서 열사의 ‘삶‘이 마음껏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되고, 영화가 되고, 노래가 되고, 서러움이었다가 분노이기도 하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고, 불의한 것들에 대한 단호함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남겨진 우리에게 그런 것들이 모여 ’무용담‘이 될 것이다. 그렇게 ’김상진 표 무용담‘이 모이면 세상은 또 바뀔 것이다. 그 무용담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자료도 없고, 동료들의 가슴에 새겨진 절절한 기록도 흐릿하고, 우리의 기억도 점점 희미해지면 질수록 열사를 빛바랜 역사의 서고에서 끌어내 ‘퍼뜨리기 좋은 역사’로 재구성할 타이밍이 지금이다. 다시 ‘김상진의 생각’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친일과 유신독재의 망령을 끊어낼 시대가 다시 열사를 불러내고 있다. 올해와 내년, 후년의 일이다.

가능한 상상

김상진 영화는 독립영화관에서 상영 가능하도록 설계할 것이다. 다큐+극(드라마)의 형태로 약 90분 분량을 목표로 한다. 국내·외 영화제 출품, TV방송편성, 온라인망에 올리는 것도 상정한다.

극영화 후반작업과 홍보비를 포함, 약 7천만 원~1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필요하다. 일반 상업영화는 수십·수백억이 들어가므로 제작비 감당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다큐로만 풀어내기에는 서사를 끌고 가기가 만만치 않다. 해서 중간중간 극의 형태를 상정하는 것이다.

제작비는 이야기농업연구소가 기본 투자하고, 김기사와 협의하면서 펀딩, 후원, 모금 등의 방식으로 조달할 생각이다. 제작비 조달과정 또한 중요한 영화홍보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MBC, SBS에서 일을 한 현업 시나리오 작가와 PD를 영입했다. 영화제작 경험도 있는 친구들이라 호흡도 잘 맞고, 열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친구들이다.

최종 산출물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 또한 영상의 시대에 더할 나위 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농업연구소와 김상진 영화팀의 역량으로 열사의 삶이, 우리들의 무용담으로 하나하나 재구성되는 과정을 찰지고 재미지게 세상에 보여드릴 생각이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글과 영상으로 세상과 호흡할 것이다.

지난 6월 김상진 한마당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8월 하반기 이후에는 전북 김제 ‘이야기농업연구소’에서 ‘김상진 영화 발대식’을 겸한 작은 영상파티를 1박 2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일을 진행하다보면 갖가지 난관에 봉착하겠지만 찬찬히 숨을 고르면서 형편 되는대로 추진하고 또 추진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날, 저 지하에서 ‘뜨거운 갈채’롤 보내겠다는 김상진 열사는 한국현대사 최고의 콘텐츠다. 그에 걸맞은 옷을 잘 만들어서 열사에게 입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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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 필자 소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세상에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책들에는 인터넷 세상에 발맞춰 농민 스스로 자신을 홍보하는 농산물 유통에 대한 깊은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다.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