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학생 악기나눔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 주무관, 환경재료과학 08)
정부광고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품은 지 4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그 의문은 시원하게 풀리지 않았고, 펼쳐진 새로운 세상이 낯설다. 그 세상에는 정가라는 걸 딱히 정해놓지 않은 제작 업체들이 있다. 부정청탁 방지법(김영란법)이 통과되어 시행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소소한(?) 선물이 오가는 현장이 있다.
광고매체에도 원청이 있고 하청이 있다. 어디서나 ‘마진’이라는 이름의 수수료를 요구하는데, 거기에서 일관된 기준을 발견하긴 힘들다. 그 와중에도 모두가 맞물려 함께 일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
다행히 상반기에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곳에 예산을 집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인 “서울시민‧학생 악기나눔” 사업 홍보가 있었다. 마케터로서의 데뷔전을 제법 큰 규모로 치렀다.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성공했다. 정확히는 세계적인 예술 공급자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해내는 데 성공했다. 세계적 수준의 엘리트 공급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은 우리 사회 어느 부분에서나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지표로도 선진국임을 부정할 수 없는 2019년의 대한민국은 다음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여기에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일개 지방교육청이 국가의 시스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으나, 미래지향점이 될 모델을 구상해볼 수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예술 향유자의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예술교육의 패러다임을 옮기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서울학생 1인 1악기 운동”의 이름으로 제안되는 이 방안은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현장에 스며들고 있다. 프로를 지향하는 교육이 아닌, 체험을 통한 경험 확산, 이를 통한 향유 문화의 정착. 완벽보다는 시도 자체를 지향하는 교육 방법론이다.
여기서 가장 큰 장벽은 장비이다.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악기, 운동을 즐기기 위한 기구는 비용이 필요하다. 당장 새것을 제공할 복지예산 항목이 지정되지 않았다. 그런 복지는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였고, 다행히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교과서를 물려주고, 교복을 물려주듯, 악기와 기구도 물려주자!
각 가정에는 다양한 이유로 남는 악기가 존재한다. 특히 어릴 때의 몸에 맞추어 산 아동용 악기들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창고행이 결정된다. 이들을 집 밖으로 꺼내게끔 하여 새로운 용도를 찾아주자는 것이 사업 목표였다. 개인의 소유가 가져오는 자원의 낭비를 공유를 통해 효율적으로 극복해보자는 공유경제의 개념에, 재활용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 개념을 더했다. 이렇게 “서울시민‧학생 악기나눔”이 고안되었다.
서울시교육청 단독으로 수행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악기를 수리해 새 생명을 불어넣어줄 낙원악기상가와 함께했다. 공공기관은 법적으로 기부를 받을 수 없기에, 아름다운가게와 함께하여 기부를 받고 세액공제를 제공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본연의 업무인 교육에 집중했다. 기증받은 악기를 활용한 예술교육을 맡았다.
사업이 준비된 뒤, 남은 것은 시민들의 참여였다.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공공마케팅-정부광고의 주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선구자에 문제의식을 기고한 그 시점에, 악기나눔 사업의 광고를 맡게 되었다.
먼저 어떤 사람이 악기를 기부해줄지 그려보았다. ‘페르소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학부모가 도출되었다. 이들은 자녀가 중학교를 다니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인 사람들이다. 사정이 빠듯하지만 아이에 대한 투자를 줄일 정도는 아니다.
아이가 어릴 때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것저것 시켜보았고, 그 중 악기도 있었다. 다만 악기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어 방치 중이다. 이들은 아이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갖고 있기에, 알림장 앱 등을 통해 학교정보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대상이 정해졌기에 이들을 접할 매체를 선정했다. 기존에 활용하던 라디오, 포털검색, 옥외매체(지하철 내부 액자, 버스TV)등은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타깃을 특정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를 추가했다. 가정통신문을 받아보는 알림장 앱 두 곳에 광고를 게시했다. 카카오톡 배너광고도 진행했다. 모두 30~50대 학부모를 타깃으로 했고, 40대 학부모에게 가장 많은 비중을 두었다. 시민 참여율이 높은 팟캐스트 두 곳에도 음향광고를 진행했다.
광고는 4월 15일부터 6월 15일까지 총 2개월간 진행되었다. 6월 1일에는 사업의 피날레 성격으로 낙원악기상가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이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날 하루에만 130여점이 넘는 악기가 기증되었다. 결과적으로 천 점대 기증을 목표로 했던 초기목표를 130% 초과달성하였다.
온라인 마케팅 상에서 2만의 노출이 발생하는 경우 200명이 관심을 보여 1명이 참여한다고들 한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000만의 서울시민에게서 500대의 악기나눔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케팅의 내용이나 분야에 따라 그 빈도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공공마케팅의 경우 상업마케팅에 비해 참여율이 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상업마케팅의 구매라는 참여에 비해 참여형태가 어렵고, 동기부여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타깃에 밀착한 광고가 참여율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 같다. 정부광고가 시민참여를 목적으로 한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내가 집행하는 예산이 정부광고의 정당성을 역설하는데 올바르게 사용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측면이 있다. 그래도 이왕 집행될 예산이라면, 세금을 내는 시민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반기에 집행될 예산도 부디 이에 부합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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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에서 광고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