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27 오후 117호(2019.07)

실화소설 ‘과학자’ 4

마침내 복제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다!

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농화학 88)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과학은 실재하며,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확증된 사실관계들에 충실하였습니다.

지난 이야기 : 말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된 슈퍼맨에게 간절한 희망이던 복제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란과 실패 속에도 연구자들은 도전을 계속하는데…….

#8. 난자 기증

“무슨 소리야? 난자를 기증한다고?”

2003년 1월, 강남의 대형병원장실. 강한우 팀과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는 공동연구자 노 이사장은, 자신을 찾아온 강한우 팀 소속 여성연구원 K에게 전혀 뜻밖의 말을 들었다.

“무슨 소리니 이게, 난자 실험하는 연구자가 자기 난자를 기증한다니…….”

“선생님, 제가 몇 달 동안 고민고민 끝에 결정한 거예요.”

“왜?”

“저희 엄마 생각이 자꾸 나서요.”

“?”

“저희 엄마, 당뇨로 고생하시다 정말 마지막까지 고통 받다 가셨거든요. 요즘 그 모습이 자꾸 떠올라요. 선생님, 이 연구가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자원한 건데, 아시겠지만 몇 달째 계속 실패만 해요. 제가 난자라도 기증해서 조금이라도 연구에 기여하고 싶어서요.”

K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 이사장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난자 기증이 어떤 과정인줄 아니?”

“알아요, 선생님. 쉽지 않다는 거. 전신마취도 해야 되고 그 전에 과배란 호르몬 주사도 맞아야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거…….”

“신랑은?”

K는 대학교수 남편을 둔 아이 엄마였다,

“신랑하고 제일 먼저 상의해서 허락받았고, 시댁 식구들께도 말씀드렸어요. 동의서도 받았어요.”

“그럼 너희 선생님은 알고 계시니?”

그 말에 K는 화들짝 놀라며,

“선생님, 저희 선생님 성격 아시잖아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아시면 노발대발하실 거예요.”

“아니 그래도 내 입장도 있고, 또 차트에도 남는데…….”

“선생님,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부탁드릴게요. 저, 차트에는 가명으로 적을게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아무 대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연구에 기여하고 싶거든요.”

익명으로 기증하겠다는 그 말에 노 이사장의 마음이 돌아섰다.

“니 마음 듣고 보니, 정말 논개가 따로 없구나. 부럽다, 그 순수한 열정이. 그래, 날짜 잡고, 내가 직접 집도하마.”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20여일 뒤, K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침대 위에 누워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그날따라 엄마 얼굴은 편안해보였다.

“자, 마취 들어갑니다. 셋까지 세세요.”

“하나, 둘, (툭)”

#9. 포기 선언

2003년 3월, 미국 피츠버그 대학 의대 세미나실.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피츠버그 의대 조나단 도슨 교수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다들 침통한 표정이다.

“결론적으로, 영장류 이상의 세포 복제는 불가능합니다. 치명적인 방추체 결함이 발견되어 4세포기 이상 배양되지 못하는 것으로…….”

그 때, ACT(세계적인 생명공학기업)의 로버트 란자 박사가 도슨의 말을 끊고 질문한다,

“섣불리 단정 짓지 맙시다. 불가능하다니…….”

그러자 도슨은,

“그럼 당신들이 보여주시오. 마의 8세포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을. 내 기꺼이 바보가 되리다.”

란자도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도슨 당신이 2001년에 정부로부터 받은 연구비 액수를 알고 있소. 1,300만 달러(우리 돈 127억 원), 원숭이 복제 하나로만. 그런 당신이 이제 와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복제는 불가능하다?”

“존경하는 란자 박사, 미안하지만 내가 쓴 돈은 당신이 ACT에서 투자받은 금액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알고 있는데, 어디까지 연구가 진척되셨는지…….”

“…….”

그 말에 란자도 고개를 숙였고,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도슨은 한숨지으며 말했다.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지금껏 최고의 팀들이 최고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소. 다음 달 사이언스지 논문을 통해 이 사실을 세계가 알게 될 거요.”

#10. NT-1의 성공

“박 선생, 이거 모니터 화면 띄워주시고……. 대기야, 빨리 전화해서 윤현수 교수 오시라고, 강성근, 이병천 교수도…….”

강한우 교수는 다급하게 지시를 내린 뒤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4월 11일 새벽 6시. 서울대 수의대 줄기세포 실험실에는 뭔가 큰일이 벌어진 듯 연구진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포 상태를 관찰하는 전자현미경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강한우 교수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져간다. 소리 없이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흐른다. 그의 옆에 속속 모여든 연구원들도, 세포의 모니터 화면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여성 연구원들은 마치 합격생 명단을 확인하는 수험생 엄마처럼 긴장된 표정으로 손을 꼭 붙잡은 채 화면을 주시했다. 강한우는 다급히 달려온 윤현수 교수(줄기세포 배양전담, 미즈메디 소속)에게 물었다.

“윤 교수, 지금 세포상태가 어떻습니까?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윤현수 교수는 모니터를 힐끗 본 뒤 전자현미경을 이리저리 조작해 두 눈으로 자세히 관찰한다. 그리고는,

“스테이블(stable)합니다.”

“와악, 세상에!”

기쁨의 탄성이 터져나온다. 윤현수는 모니터 화면 속 세포 한가운데를 가리키면서

“보시다시피 가운데 중심체 주변으로 세포가 촘촘히 모여 있습니다. 이건, 전형적인 ES 셀(배아줄기세포주)의 상태입니다.”

“성공입니까?”

“예, 성공입니다.”

“만세~” “짝짝짝짝”

만세와 박수소리, 연구원들은 한데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선생님, 우리가 해낸 거 맞지요?”

박을순, 구자민 연구원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하늘도 감동하셨나보다. 고맙다, 너무너무 고생…… 많았다…….”

강한우와 연구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찰칵’

연구원 한 명이 줄기세포의 상태를 촬영했다. 그것은 마치 까무룩한 우주공간 한가운데 은하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8세포기 장벽을 뛰어넘어 배양된, 세계 최초의 인간 복제 줄기세포.

.

“NT(체세포 핵이식)로 태어난 1번 줄기세포……. NT-1 어떤가?”

세포 이름은 NT-1으로 명명됐다. 2003년 4월 11일의 일이다.

#11. 조나단 도슨

5개월 뒤인 2003년 9월. NT-1의 세포 사진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남자가 있었다. 피츠버그 대학의 조나단 도슨 교수. 그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1등석에서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펴놓고 NT-1의 세포 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었다.

“최근 <사이언스>에 쇼킹한 논문 한 편이 투고된 것 같더군.”

도슨 교수는 며칠 전 정부 요직에 있는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자네가 놀라서 뒤로 넘어갈만한 논문 같던데.”

“혹시 복제줄기세포?”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처>에 먼저 투고했는데 <네이처>쪽에서 윤리논란이 부담스럽다며 난색을 표하니까 <사이언스>에 투고한 거 같더군.”

“팩트는 확실한가?”

“그런 듯, <사이언스>에선 중대논문으로 보고 검증 들어갔는데 8세포기를 넘어 줄기세포 배양까지는 확실한 것 같다는군.”

도슨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딘가? 미국은 아닐 테고.”

“나도 자네도 모르는 팀이네.”

“영국? 중국? 일본?”

친구는 연신 고개를 가로젓다가,

“사우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Korean War?”

“그렇다네.”

도슨은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참혹한 전쟁으로 잿더미가 됐던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성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이제 몇 시간 뒤면 미지의 연구팀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후우. 그가 크게 심호흡을 하는 사이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잠시 후 이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

.

노광준_ 별명 ‘노진구’. 도라에몽에게 늘 민폐만 끼쳐 만화사상 최악의 캐릭터로 손꼽힐 만큼 띨띨하고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우연히 라디오 피디가 되어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 양과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음. FM 99.9MHz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언젠가 농촌에 살고픈 닉네임 ‘시골피디’.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