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의 절망과 고독, 마을활동으로 극복
오정삼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 농경제 79)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저소득 독거 중장년의 자립능력 향상을 위한 커뮤니티 통합지원 프로그램’을 1년 반 동안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강북구 지역 내 복지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저소득 독거 중장년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주거안정 및 생활지원을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자립의지 고취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역 커뮤니티에의 흡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인구 통계의 변화 추이를 볼 때 소위 ‘나 홀로 50대’의 인구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로 대표되는 독거 중장년이 큰 숫자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노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빈곤, 무위 혹은 고독, 자살 등이 중·장년의 문제로 그대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나 홀로 중장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복지 현실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이웃살피미’ 사업 등을 통해서 이들 고립가구에 대한 발굴에 힘을 쓰기 시작하고 있으나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가는 상황이다.
독거 중장년들의 경우 생애주기 상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사회적 관계망을 단절하고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상태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공간적 은둔뿐만 아니라 실직이나 심신미약 등으로 인하여 고립의 성격이 그 어떤 세대보다 안 좋은 경우가 많다. 특히 IMF 이후에 실직과 만성적 부채 등으로 이혼 후 알코올 등에의 의존을 거듭하던 독거 중장년들은 잇따른 생애사건의 버티기 힘든 충격에 의해서 가족과 분리 된 후 고립을 선택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암, 당뇨, 간 손상 등을 부르고, 정신적 질환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이에 이들에게 남은 기회는 더욱 사라져가고, 마침내 이들 중장년 1인 가구의 고립현상은 고독사의 증가로 귀결된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고독사는 50대 중장년 남성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고독사 확실사례로 추정되는 사망사건은 서울의 경우 2016년 한해 162건이 발생했는데, 이중 중장년층이 62%에 달한다. 또 이들 중장년층 고독사 가운데 82%가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절망은 고독을 부르고, 고독은 병을 부르는 악순환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에 따르면, 저소득 독거 중장년들의 뿌리 깊은 절망감은 단순히 생산성 하락에 따른 침체뿐만 아니라 오랜 좌절과 고립의 경험에 의해 노년기에나 나타날 법한 절망의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자립과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정책이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저소득 독거 중장년 세대는 자활근로의 의무가 주어져 있는 조건부 수급자들이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 수급자들이다. 결국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는 공공부조(public assistance)를 통한 기초적인 생활 유지 능력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같이 보충급여의 원칙에 의해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은 많은 문제가 있다.
수급자격의 경계치를 넘나드는 낮은 수준의 소득이 예상되는 경우, 수급자 자신이 수급 자격을 박탈당할 것을 우려하여 의식적으로 일자리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와 같은 보충급여 방식의 공공부조 정책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근로 동기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독거 중장년들도 조건부수급자이거나 수급자인 상태이다. 이들이 자립을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려면 수급자 자격에서 탈락할 수 있는 모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경우, 결핍, 질병, 나태, 무기력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지원받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복지자원들을 탐색하러 돌아다니며 소위 ‘복지병’이라고 불리는 시혜 의존적인 생활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이 상실감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면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마을과 커뮤니티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여 갈 방법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 스스로 동아리 자조모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지역사회 참여 기회를 높이기 위해서 강북마을텃밭공동체의 텃밭작물 키우기나 지역장터의 플리마켓 등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산 활동 이전에는 “언니가 사생활이 필요하다고 해서 분리해서 각자 살려면 주거지원이 가능한 방법이 있을지 궁금해요”, 혹은 “발쪽에 마비가 오는데 담배가 원인일 수도 있고 당뇨 때문일 수도 있는데 현미구입 비용이 없다” 등의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대화를 주로 했다면, 생산 활동 이후에는 “강북마을 텃밭에서 쌈채소 류를 수확중인데 작물에 물을 주면서 마음에 물을 주는 것처럼 기쁘다”, 혹은 ”요즘 뜨개질로 만든 제품들을 장터에서 팔고 있어요“ 등 긍정적인 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생애주기의 다양한 사건과 계기에 의해서 삶의 의지를 잃고 깊은 침체와 절망감에 빠졌던 이들이 오랜 좌절과 고립에서 벗어나서 마음을 다잡고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자고 격려하는 모습을 본다. 나와 비슷한 또래가 많기에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도 있었던 이들의 변화가 더욱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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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pine@chol.com)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