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열은 누가 만들었나
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지난번 기고에서 한국의 교육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살펴봤습니다. 정치권과 교육부, 그리고 각 시·도 교육청은 수많은 교육정책으로 과도한 경쟁을 줄여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결과는 모두 실패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는 지금의 한국 교육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놓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만 바꿔보려는 노력은 어디서든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격차입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가난해서는 아닙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1인당 연평균 3,500만원 정도는 번다는 얘기고, 4인 가구면 월 소득이 1,360만원 정도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벌써 의아합니다. 평균이 저 정도라는데, 이를 체감하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국민총소득 3만 달러 돌파를 알리는 기사 옆에 상대적 빈곤율이 17.4%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란히 붙습니다. 2017년 빈곤선은 연 1,322만원으로 ‘3만 달러 시대’의 4인 가구 평균 월급과 비슷합니다. 6명 중에 1명은 월 12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는 얘깁니다.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에서는 상대적 빈곤율이 무려 43.8%입니다. 거의 2명 중 1명의 노후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불평등이 문제입니다. 상·하위 20%의 소득 차이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배율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납니다. 시장소득 기준으로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11.27배 많이 법니다. 게다가 매년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만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하위 20%의 소득이 줄고 있습니다. 절대적으로도 소득이 줄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아래 그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추이를 보여줍니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을 벌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5.1을, 중소기업 정규직은 54.3을,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0.3을 법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비교하면 같은 시간 일해서 대기업 정규직이 400만원 벌 때, 비정규직은 160만원 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노동시간 역시 정규직이 더 길고, 사내 복지도 훨씬 좋습니다. 퇴직연금 같은 것만 봐도 정규직은 57.2%가 가입한 반면, 정규직은 21.8%만 가입했습니다. 상여금 적용률도 64.6% 대 22.5%로 3배 가까운 차이를 보입니다.
게다가 대기업에 고용된 인원은 전체 노동자의 20%도 채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노동시장의 내부 사다리는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소설가 장강명의 말마따나 “한국 청년들은 ‘중견·중소기업에 입사 → 성실한 직장 생활 → 점차 업계의 인정을 받음 → 삼성·LG로 스카우트되거나, 다니던 회사에서 받는 대우가 삼성·LG 직원만큼 좋아짐’이라는 전망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모든 청년들은 사회가 자원을 몰아주는 이 20% 안에 들기 위한 경쟁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대입은 그 출발점입니다. 불평등 구조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대입 방식만 바꾼다고 경쟁이 줄어들 리 만무합니다. 대기업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누가 그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한국의 교육열은 한국의 불평등한 노동시장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결과지 원인이 아닙니다. 수능이냐 학종이냐, 자사고냐 일반고냐 같은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노동, 산업정책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너무 간단한 해결책은 언제나 거짓말일 확률이 높습니다.
<참고자료>
「2017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18-04-26.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 통계청 보도자료, 2019-02-21.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통계청 보도자료, 2018-12-20.
이경원, 「축배 없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국민일보>, 2019-03-06.
장강명, 『당선, 합격, 계급』, 민음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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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 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