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 지역 살기
박선아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농경제 08)
방학마다 나는 집이 두 개가 된다. 방학이 시작되면 서울 신림동 녹두거리를 벗어나 경남 진주시에 반쯤 이사를 가고 헬스장 한 달 치를 끊는다. 진주에 별 연고는 없지만 농경사(농경제사회학부) 동기 집에 얹혀사는 나의 정체성은 물론 ‘서울사람’이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가 제일 컸는데, 점차 미래의 나의 터전으로 삼을 수도 있을 곳이라 여기고 있다. 고향인 수원과 학교가 있는 서울에서 생활한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아직 지역에 가는 것은 ‘나들이’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눈에 띠는 차이점들이 아직 신기할 따름이다.
이곳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텔레비전 뉴스였다. 같은 국영방송사여도 기지국이 다르니 다른 뉴스가 나온다. 경남의 정치·사건·사고들로 채워지는 뉴스를 보다 보면,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서울’의 뉴스와는 사뭇 달라 꼭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어의 차이도 실감한다. 늘 서울, 그 중에서도 서울대 안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현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적이 너무 많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넓었던가, 아니면 거꾸로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소수의 언어였을까.
진주에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고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맛있어서이다. ‘경남의 국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집들을 가보면 경남엔 국밥집이 많을 뿐만 아니라 국밥 장인들도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파전과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방아도 사랑하게 되었다. 진주는 교통도 좋아서 근처 사천(삼천포), 통영, 창원, 거창, 남해 등에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물론 자가용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요즘엔 카 쉐어링이 잘 되어있으니 여행가고 싶은 마음과 약간의 대여비만 있으면 멋진 휴양지에 도착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청년들에게 진주시, 혹은 경남이 천국 같은 곳은 아닐 것이다. 경남 청년들은 근처 군에서 나와 진주시로, 진주시에서 나와 창원으로, 서울로 간다. 금요일 진주 시외버스·고속버스 개양정류장에는 젊은이들의 ‘탈 진주’ 행렬로 가득가득하다. 한편, 낮에는 어디 있었는지 모를 청년들이 밤만 되면 술집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정말 술집에 자리가 없다), 주말에는 수백 석 되는 PC방마다 자리가 없다. 이들이 정말 술과 게임을 유난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문화생활 거리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모를 때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예 그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다면 편견조차 없다. 아마 자신을 ‘서울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지역은 관심 외의 대상일 것이다. 나는 서울보다 지역에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청년 중 한 사람이다. 내 성향이 그런 기회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 어딜 가도 먹고는 살 거라는 괜한 자신감도 있기 때문이다.
탈 서울 및 지역살이를 예찬하는 청년들도 있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소가 있는 곳인 충남, 나주, 창원, 통영 등에 사는 것도 선호한다. 뭐 연구직 일자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앞선 어려움들은 무엇이 문제가 되랴. 한 여자 후배는 이번 여름 진도군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다녀오더니 진도군에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적당히 농사도 지으면서 살겠다고 선포했다.
한 남자 후배는 제주도 토박이인데, 하루는 진지하게 제주도 사람이랑 제주도 말로 말하고 싶다고 고백해서 또 놀라움을 주었다. 내 주변에 특이한 사람이 많은 걸까, 내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걸까, 지역 시대가 도래한 걸까. 서울이 내가 알던 당연한 서울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농경사에서 지역정보를 전공하고 현재 환경·에너지를 공부하게 된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역 간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 문제들은 객관적인 사회문제에서 점점 지극히 주관적인 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내 생활이 수원에서 관악으로 통학하는 반경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지역살이를 고민해보니 그전엔 모든 것이 당연해보였던 서울이, 그저 모든 것이 기묘하게 얽혀 만들어진 많은 도시 중 하나라는 것을 체감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어쩌면 이런 나의 경험과 시선이 인구소멸이나 청년 동력을 걱정하는 작은 도시들에게 활력을 줄 사회적‧정책적 밑바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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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_ 농생대 농경제사회학부 지역정보전공 08학번. 길었던 학부생활을 지나 지금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농촌, 지역과 사람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입니다. (2468nice@gmail.com)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