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둔야학교 홈커밍데이 취재기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올해 6월 1일은 두 번째 서둔야학사가 발간된 날이자, 서둔야학 홈커밍데이 행사가 열린 날이다. 첫 번째 서둔야학사는 2000년 5월에 나왔다. 서둔야학은 1930년대에 뜻있는 서울대 농대생들에 의해 시작됐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82년에 문을 닫았다.
이날 행사에는 59학번과 60학번 선생님들이 참석하셨다. 이분들은 가르친 제자 한 명 없어도 서둔야학 모임에 의미를 두고 오신 것이다. 서둔야학회가 다시 만들어진 것은 1991년이었는데, 1993년에는 1950년대에 서둔야학에서 공부했던 대선배님이 참석하기도 했다.
후배들이 반가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계속 웃으시던 선배님이었다. 서둔야학 모임이 있다니까 너무 반가워서 달려왔다는 선배 언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모임이었지만, ‘서둔야학이라는 절절한 그리움’이 언니를 그 자리로 이끈 것이다.
서둔야학 모임은 해마다 열렸는데, 이날은 80여분이 오셔서 참석인원이 가장 많았다. 옛 농대 화학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행사에서는 이번에 완성된 ‘서둔야학사’와 함께, 야학선생님들이 구입해서 보관해왔던 내가 쓴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참석자들에게 선물했다. 참석 인원이 많아서 기수별로 인사를 했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옛 농대 캠퍼스 수목원에서 뷔페식으로 점식식사를 한 뒤, 동영상을 제작하시는 안병권 선생님이 정성껏 만드신 서둔야학 스토리를 감상했다. 삼삼오오 걸어서 서둔야학으로 갔다. 2016년 황건식 선생님이 사비 이천만원을 들여서 낡은 서둔야학 건물을 리모델링 해주셨는데, 이날은 야학 화단에 충청도 해미에서부터 싣고 온 화초들을 심어주셨다. 지난 4월에 꽃복숭아, 매화, 철쭉 등을 심어주셨는데 이번에 더 심어주신 것이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은 한때 청춘을 불태웠던, 혹은 아린 추억이 서려있는 학교 건물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야학 교정에 둥글게 모여서서 황건식 선생님의 선창으로 서둔야학 교가 제창을 한 후 공식적인 모임을 마무리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나는 33년을 고등학교에 근무했다. 제자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줄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68년 5월에 죽기로 결심하고, 스승의 날에 야학 선생님들께 직접 만든 꽃을 달아드린 사연이 있는 나로서는 만감이 교차했던 것이다.
선생님들 가슴에 다시 꽃을 달아드렸다. 그 꽃을 댁으로 가져가신 선생님들이 꽃병에 꽂은 후 ‘서둔야학 단톡방’에 사진을 올려주셨다. 그 꽃은 50년이 넘었어도 선생님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드린다는 의미였고, 선생님들께서는 그 마음을 아신다는 의미였다.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해요!’
서둔야학 선생님들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이 말을 꼭 드리고 싶다.
가난한 야학생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주신 서둔야학의 교육은 우리나라 교육사에 길이 남을만한 것이다. 서둔야학 건물은 54년 전 야학선생님들과 야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더 나아가 세계 교육사에 이런 사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미 깊은 건물이다. 이제 서둔야학 건물을 국가에서 정식으로 유적지로 지정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서둔야학인들의 바람이다.
어느 흉악한 범죄자가 말했다.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가난해서 미술도구를 챙겨가지 못한 자신을 때리고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었다고. 그때 그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현직 교사로서 그 사람의 말이 많이 아팠다. 선생님의 태도는 배우는 학생에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둔야학 선생님들과의 만남은 내 삶을 결정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분들은 내게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셨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셨다. 그 시절 야학선생님들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부모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서둔야학 선생님들보다 제자들에게 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선생님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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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_선생은 서둔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Last modified: 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