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38 오후 127호(2021.01)

김상진 영화 제작기 10

다큐영화 함께 만들기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 소장, 농생물 79

열사의 살아생전을 애니메이션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를 육성으로 남긴 열사의 그 ‘생생한 존엄’ 앞에 나는 다시 서있다.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떨리는 심정으로 그림 콘티 작가와 애니메이션 작가(이주명)와 계약서에 서명했다.

살갑기도 하면서 깊이가 느껴지는 작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니 ‘김상진열사의 살아생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요즘 호흡으로 그려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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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1975.김상진>의 현재 제작공정은 55%다. 2019년 봄, 영화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해 여름부터 준비, 시나리오 작업,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해 겨울 12월과 해를 넘겨 1월까지 오마이컴퍼니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2천 5백만 원, 김기사 모금으로 5백만 원의 후원금이 모아졌다.

열사 큰형님을 시작으로 관련 선후배들 인터뷰, 스케치 촬영을 거쳐 2020년 2월 오둘둘 멤버 인터뷰 및 관악캠퍼스 현장을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이제 주·조연 배우 포함 엑스트라 40여 명을 섭외해서 열사의 살아생전을 드라마(재연)로 촬영하는 일이 남은 상태였다. 제작비 여건상 기본적인 인원으로 앵글을 잡고 나머지는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옷을 입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2월 하순, 오둘둘 촬영을 마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다. ‘뭐 금방 상황 종료되겠지’ 하는 맘으로 시나리오를 업그레이드하고 자료화면을 구상하며 제작진들은 차분하게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아든 비보, 7월, 오둘둘 씬의 주인공 중 한 분인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이 시대 이슈의 중심에 선 분이라 김상진열사 할복 의거의 영향을 받아 군부독재시대 판·검사가 아니고 인권변호사로, 시민운동가로 서울시장으로 살아온 오늘까지가 중요했다. 제작자 입장에선 상징적인 존재였다. 더하여 김상진의 나비효과 콘셉트로 젊은 박원순의 영향으로 새롭게 눈을 뜨는 조카들의 이야기를 섭외 중이었다. 그랬는데….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제작은 멈출 수 없을터.

인터뷰 프리뷰 작업을 진행하고, 새롭게 들고나는 아이디어들을 시나리오에 반영하면서 전국의 영화 촬영장들을 사전 답사했다. 장영철 감독과 나는 틈나는 대로 순천 드라마 셋트장, 논산 영화촬영장 등 현장을 살폈다. 코로나 상황만 여유가 생기면 주·조연 배우와 엑스트라 분들과 현장으로 내려가 4박 5일 정도 촬영을 마칠 생각이었다.

대학에 갓 입학, 미팅 장면, 데이트, 군대생활, 내무반, 문 이병의 폐병 치료를 도와주는 상진, 군대 부정선거, 푸른 여관, 한얼, 농촌활동, 주점, 강의장, 시위 현장, 할복 의거 등등 열사의 살아생전을 수도 없이 설계하고 지우고 또 구상했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상황과 맞물려 고뇌하고 변화해가는 열사의 감정선을 쫓아가느라 밤을 새기도 여러 날이었다. 동시에 ‘김상진의 나비효과’ 여정으로 연성수, 김창순 선배의 궤적과 현재를 찾아 서울, 전북 부안 등지로 촬영팀은 심층취재, 거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0년 여름을 넘기면서 제작진은 다시 의기투합, 재촬영 입맛을 다시는데 코로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가 여유가 있으려나 싶었다. 제작진은 7월 시사회를 목표로 스탠바이 들어갔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코로나는 변이종 출현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영화 제작은 다시 무기한 대기 상태로 돌입했다. 묘하게도 제작진이 상황이 풀리겠다 싶어 제작회의를 마치고 시사회 일정을 설계하고 나면 바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한두 번도 아니고….

2021년도에 나라에서 열사에게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무궁화훈장을 수여했다. ‘이천 묘역’과 ‘수원 의거 현장’에서 훈장 헌정식까지 촬영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영화 제작을 마냥 뒤로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 제작자인 나도, 김기사 회원들도, 1차 후원해주신 분들께도 여간 면구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해서 ‘김상진열사의 살아생전’을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처음 계획에서 영화 구성은

1. 시대(자료화면), 2. 열사의 생애(드라마, 재연), 3. 지금까지, 우리들, 앞으로.였다

여기서 두 번째 항목 열사의 생애를 ‘애니메이션(그림)’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단순한 만화를 넘어서 약간의 액션과 성우들의 연기와 음성이 들어간다. 물론 실사 촬영만큼에는 어림없겠지만 나름 어색하지 않게 연출할 생각이다. 영화 흐름은 자료화면(시대)과 인터뷰 화면, 애니메이션과 심층 거리 촬영 및 스케치 장면들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끌고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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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무리까지, 약 5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가 필요하다.

제작비의 용처는 다음과 같다.

– 후반 그래픽(CG)

– 음향 및 믹싱

– 종합편집실 임대

– 곡창작 및 저작권 : 언더그라운드 가수(창작OST)+민중가요

– 성우 : 내레이션 및 극음성 연기

– 영화 등급심사

– 자료화면 구입 : 70년대 화면(KTV), 약 30편

– 재연 그림(애니메이션) : 예상 200~250컷

– 콘티제작 : 재연 그림을 위한 콘티

– 마케팅 홍보 : 리워드 제작, 온라인 홍보, 다큐 자료집, VOD배포, 포스터

– 연출, 작가

– 추가 인터뷰 및 스케치 촬영

– 진행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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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1975.김상진> 프로젝트는 ‘영화 만들기’이면서 동시에 ‘김상진 실록 편찬’이다.

이 기회에 관련된 분들의 육성자료와 기록,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자료들을 영상과 기록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놓으려 한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물리적으로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 정도로 열사의 콘텐츠를 표출하겠지만 훗날 또 다른 누군가가 김상진의 이야기를 큰 제박비와 의지를 갖고 풀어내려 할 때 기꺼이 꺼내쓸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를 육성으로 남긴 열사의 그 ‘생생한 존엄’ 앞에 나는 다시 선다.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이 다큐를 통해 내가 세상에 던지려는 메시지는 뭘까?

간절하다.

살아생전 콘텐츠가 애니메이션으로 그림 컷이 생산되는 대로 차례차례 풍요롭게 이야기 옷을 입힐 생각이다.

5월에 1차 시사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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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