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힘든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가능한가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학교에서는 여전히 영수증에 풀을 칠하고 있다.
현업에서 뛰고 계신 많은 분들은 이 한 장면을 통해 교육행정의 후진성에 대해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줄어들어 쉽고 편해 보일 것 같은 학교 현장은 지속적으로 일이 많아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개별 구성원 모두에게 각자의 이유가 있다.
수업을 하는 교사들에게 수업 이외에 부가되는 업무는 해마다 늘어난다. 해마다 줄이려 노력하나, 줄이는 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많이 새로 늘어난다. 사회가 급속히 변해가니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지는 오래되었으나, 용한 해결책은 아직 없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매년 끊임없이 학교로 내려가는 공문을 감축하고 업무를 단순화하려 노력하나, 새로 생기는 사회변화에 대응한 현안 업무들이 무수히 생겨나는 걸 막을 길은 없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교원업무경감 T/F를 가동한 뒤 대안을 마련하여 시범 적용해보려 하나, 구성원 간의 합의된 안을 도출하지 못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일이 많기에,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원을 늘려달라고 외쳐보나, 학생 수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 때문에 오히려 교원 수는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본질적으로 교육활동과 교육행정을 무 자르듯 속 시원히 딱 자르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떻게든 행정실을 키워서 행정업무를 행정실에 맡기면 될 것 같은데, 행정실은 전혀 커지지 않았다. 서울의 경우 작은 행정실은 3명 이하로 구성되고, 큰 행정실이라도 6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개별 교육청은 늘 증원을 요청하나, 기재부와 행안부는 공무원 숫자를 늘릴 의지와 능력이 없다.
그래서인지 학교에는 교육공무직원이 늘어났다. 기존에는 거의 전부가 비정규직이었으나, 문재인정부 들어 많은 수가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고, 교육감 직고용으로 전환되어 순환전보까지 추진되고 있는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는 교무실(국가직-교육공무원)-행정실(지방직-교육행정공무원)의 이원조직에서 공무직을 포함한 삼원 조직이 되었다. 이 덕분에 학교의 업무는 줄어들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현재 전국 모든 교육청 앞에는 공무직 단체가 주도하는 농성장 천막이 몇 개씩 펼쳐져 있다. 서울시교육청 청사 내에도 4개 단체의 천막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교육부가 주도하는 전국단위의 공무직 임금교섭 시기이기에 17개 시도의 개별 교육감을 압박해서 성공적 단협을 이끌어내고자 함이다. 여전히, 공무직의 처우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학교의 세 구성원 중 유일하게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있는 공무직이기에, 각종 노동쟁의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이다.
매년 반복되는 노동쟁의를 통해 조금씩 처우가 개선되고는 있으나, 이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단협으로 규정된 명문적 해석 이외의 모든 과외적인 업무를 거부하며 업무 핑퐁은 일상이 되었다. 학교장의 역량에 따라 학내 갈등조정 여부가 천차만별이다. 노노갈등의 온상이 된 학교에서 교원들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힘들고, 행정실은 수십 명~수백 명 규모의 학교 조직에서 가장 소수의 인원으로 힘들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고, 공무직은 다른 공무원들과 처우가 다르다고 늘 불합리하다고 힘들어한다. 모두가 힘든 이곳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안 힘들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와중에 업무를 받쳐줘야 하는 교육행정 전자정부 시스템은 아직 미완에 가깝다. 민간기업의 여러 ERP와 비교하자면 더더욱 그렇다. 서두에 말했듯 교육현장에서는 아직도 영수증에 풀을 칠하고 있다. 그런데, 당장 K-에듀파인과 나이스(NEIS)는 학교는커녕 교육청도 개별 개선 작업에 나설 수는 없는 국가 표준 플랫폼이다. 물론, 국가행정의 일관성을 위해서 지역 특화될 이유가 없을 수도 있고, 개별 교육청 단위에서 손대기에도 너무나 거대한 시스템이긴 하다. 현재 개발 예정인 4세대 나이스만 해도 개발비가 2800억 원에 달하고, k-에듀파인도 개발에 15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거대 시스템이다.
이런 대규모 SI 프로젝트의 특성인지, 혹은 관 주도 프로젝트의 특성인지 일단 처음 론칭때는 늘 버벅거리고 느렸다. 교육부는 대기업 입찰제한 때문이라고 소리 높인다. 하지만 과기부는 대기업 입찰제한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 대기업이 들어온다한들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매번 서비스를 론칭하고, 무수한 업데이트를 통해 버벅거리며 조금씩 보완한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요구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반영 여부를 기우제 지내듯 기다려야만 한다. 학교현장은 오늘도 느리고 모자란 업무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그래도 세상은 언제나 조금씩 좋아지고 있을 것이다. 30년 차 사무관님들이 무용담처럼 말씀해 주시는, 학교 모든 직원의 급여를 전지에 죽 적어서 원단위까지 하나하나 수기로 계산해야 했던 시절보다 지금은 몇백 배는 좋아진 것 아닌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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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