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19 오후 127호(2021.01)

살아가는 이야기
2022년 둘째 날에 화물차를 타다

2022년 둘째 날에 화물차를 타다

이정양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 농학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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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농업연구사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별 일을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삽질은 기본이요, 경운기 운전, 트랙터 운전, 포크레인 운전, 트레일러 운전, 전기톱 사용, 예초기 사용, 각종 전동기 사용 및 수리, 용접, 산소절단 등 육체적 활동뿐만 아니라,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활용능력 1급, 농화학기술사, 종자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유기농업기술사, 종자·시설원예·축산·식물보호 기사 등 각종 자격증 취득 등의 지적인 활동. 더불어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하여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 능력까지 참으로 많은 능력을 갖추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초등학교 5학년 때쯤에는 아버지와 함께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수리하고 나서 저수지에 가서 씻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생각도 나네요. 그리고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등교하기 전에 어머니께서 마늘을 심어야 하고, 깨를 심어야 할 때면 쇠스랑으로 땅을 파드리고 학교에 가곤 하였던 생각도 납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어떻게든 움직이는 쪽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2012년도에 1차 명퇴를 하고서는 ㈜코스팜이라는 친구의 비료공장에서 식물영양제 병뚜껑 닫는 일을 한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고 그냥 산엘 많이 다닌 것 같습니다. 너무 과하게 다닌 탓인지 오른쪽 무릎 수술도 했답니다. 아니 그보다는 단감 농장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삐끗하여 무릎이 잘 접어지지 않아서 수술을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쪽이었습니다. 2015년에 다시 취직을 하였을 때에는 직접 일을 하지 않는 대신에 고흥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든 농가 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을 좋아하였는데, 사무실에서는 그런 저를 사무적인 일에 매어 놓으려 하여 결국은 저의 성정과 맞지 않아 2차 명퇴를 하게 된 것 같기도 하구요.

두 번째로 그만두고는 와포햇살에 취직하여 기름병 케이스 접는 일도 하고, 담우에 취직해서는 취나물 장아찌 아이스박스 포장 작업을 하고, 그곳을 그만두고는 버스 교통량 조사, 사회통계 조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고흥군 해상관광 개발을 위한 현장답사 아르바이트도 하였습니다. 10여 명의 동행자와 함께 고흥의 자랑인 활개바위를 보는 호강을 누렸습니다. 특히 활개바위 구경은 고흥에 산지 20년 만에 이룬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입니다.

고흥의 자랑 활개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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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경험에 추가로 올해 첫 아르바이트라고나 할까요? 1월 2일 23시부터 1월 3일 22시까지 23시간 동안 대형 화물차를 타고 경기지역을 다녀온 아르바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 해맞이

새해 해맞이를 하기 위하여 2021년 마지막 날에 전북 군산에서 형님과 형수님께서 고흥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그날 광주로 가서 오후 5시에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막내딸을 데리고 고흥으로 왔습니다. 서울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차가 밀릴 것을 걱정하여 다음날 새벽 4시에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2021년 마지막 날 저녁은 형님 내외와 아내와 딸을 포함한 다섯이서 함께 하였습니다. 아내는 다음날 노인요양병원에 출근하여야 해서 형님, 형수님, 딸, 저 이렇게 넷이서만 고흥군 도화면 지죽대교 다리 위에서 7시 40분쯤에 해맞이를 하였습니다. 두 아들은 8시 30분쯤에 고흥에 도착할 것이라 하여 아예 고흥읍내의 식당으로 오라고 하여 동태탕으로 올해 첫 식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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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과 형수님께서는 바로 군산으로 가시고 저희는 목욕을 갔다가 나와서 오랜만에 고흥 지역을 드라이브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산면 거금도를 휘 둘러보고, 도양읍 녹동항에서 돈까스로 점심식사를 하고, 집에서 쉬기 위하여 돌아오는 중에 갑자기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10년간 살았던 예전의 유자시험장, 지금은 고흥군농업기술센터 자리를 둘러보러 갔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와 고사리 꺾으러 다닌 뒷산, 쥐불놀이하던 논, 가재를 잡았던 수로 등을 보면서 추억을 되살리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곳을 떠나 집으로 가다가 딸아이가 그곳으로부터 2km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에 가보자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2002년에 처음 고흥으로 왔을 때 큰아이는 2학년, 둘째는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막내 아이는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교생이 100명이 될까말까한 학교에 막내 아이를 유치원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다른 학교로 가겠다는 협박을 하여 막내는 유치원을 3년이나 다닐 수 있었습니다. 특히 딸아이는 9년이나 다닌 학교의 변화에 굉장히 놀란 것 같았습니다. 세 아이 모두 졸업 후 20년 후에 개봉하는 타임캡슐을 묻은 체육관 앞에서 개봉할 때가 5년, 7년, 9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올해 처음으로 다섯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아내와 두 아들은 같이 해맞이를 하지 못했으니 1월 2일에 또 해를 보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저희만 1월 1일이 아닌 1월 2일에 해를 보러 온 줄 알았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해를 보러 왔습니다. 게을러서 1월 1일 해를 놓치고 1월 2일 해를 보았다면 자신에게 조금 떳떳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었겠으나, 아내는 일을 하러 가고 두 아들은 일을 마치고 먼 길을 늦게 내려와서 1월 1일 해를 보지 못하고 1월 2일 해를 본 것은 왠지 더 뿌듯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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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푹 쉬다가 또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는 쉬다가 출근하여야 해서 저만 세 아이를 데리고 광주로 향하였습니다. 딸을 원룸에 내려주고 두 아들은 광주고속터미널에 내려주었습니다.

2. 순천에서 출발 전까지

광주에 세 아이를 모두 내려주고 순천으로 향하였습니다. 법인 명의로 구입한 차가 스타리아 경유차인데, 고흥에서 광주로 가는 길에 계기판에 요소수 경고등이 켜져서 곡성휴게소에서 요소수를 1리터에 2천 원씩, 9리터 18,000원 값을 넣었습니다. 10월 말에 넣었을 때에는 1리터에 900원이었는데, 많이 올랐더군요. 그래도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11월 말과 12월 초에는 경유차는 운행이 어려울 것처럼 떠들썩했으니까요. 어떤 화물차 기사님은 6월에 리터당 650원에 많은 양을 구입해 놓아서 마음 편하게 관망하였지만 어떤 분은 12월에 급하게 구하느라 리터당 2,500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구입해 놓으시기도 하였답니다.

며칠 전에 순천에 살면서 화물차를 운행하는 분과 소주를 한잔하면서 1월 2일 23시에 올해 첫 영업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형님! 혼자 운전하기 심심하고 힘드시죠? 저는 화물차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궁금하여 경험을 하고 싶으니 같이 갈까요? 다만 너무 많은 금액을 주면 제가 부담스럽고 아예 안 받으면 형님이 미안할 테니 2만 원만 주슈”라고 했더니 2만 원은 너무 적으니 식비를 포함해서 5만 원을 주겠다고 하여 아르바이트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식비 포함이라는 말은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함께한 화물차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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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운전기사님이 밤 11시에 출발하기 위해서는 저녁 5시나 6시부터는 잠을 자 두어야 해서 저는 6시쯤에 순천에 도착해서 추어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주 1병을 반주로 마시고 혼자 근처의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당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한 사람이 카운터 근처에서 눈이 땡그래져서는 저를 빤히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저도 3초 정도 빤히 쳐다본 후에 “어! 누구 아닌가?”하고 그 친구를 알아보았습니다.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급격히 친해진 친구였습니다. 고흥군 금산면 오천이라는 곳에서 해산물을 가공하는 골드온누리영어조합법인 대표여서 순천의 지나가는 길에 들린 당구장에서 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였기에 무쟈게 반가웠습니다.

사정 얘기를 하고 혼자 시간 보내려고 들렸다고 했더니, 억지로 시간을 내어 친구는 80을 놓고, 저는 150을 놓고 당구를 즐겁게 두 판을 치고 나와서 순천역에서 속을 비우는 대사를 치르고 9시 30분쯤에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11시에 화물차 기사님을 만났습니다. 당구 결과는 어땠을까요?

참고로 제가 타고 간 화물차는 냉장탑차로 윙바디 형식으로 좌우로 개폐가 편하지만 공간이 많이 필요한 단점도 있답니다. 차의 총길이는 12.5m, 적재함 길이는 9.6m, 적재함 폭은 2.4m, 적재함 높이는 2.6m, 최대 적재 무게는 15톤입니다. 순천에서 김포까지 운행을 하고 내려오면 보통 경유를 250리터 주유하는데, 가장 많이는 280리터까지 주유한 적도 있답니다. 짐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1.0m×1.2m 크기의 팔레트에 올려진 짐을 지게차로 승하차합니다. 가끔은 직접 까대기 하는 경우도 있는데, 추가 요금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3. 순천을 출발하여 하차까지

기사님의 집에서 화물차 주차장까지는 15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대형 화물차라서 시가지 외곽의 큰 주유소에 주차를 한답니다. 예전에는 순천만정원박람회의 주차장을 이용하였는데, 무슨 공사를 한다고 하여 이동을 하였답니다. 이용 비용은 무료인데, 치명적인 조건이 바로 옆의 주유소는 경유 1리터 가격이 1,408원이지만 그 주유소는 1,450원인데, 반드시 기름은 그 주유소에서 넣는 것이랍니다. 운행을 한번 하면 250리터 정도를 주유하고, 한 달에 12 내지 13회 정도 운행을 하니, 한 달에 3,000리터 정도를 주유하게 되어, 13만 원 정도의 주차비를 지불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식비 포함이라는 말은 따로 식사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 식사는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출발하기 전에 약밥을 8개 정도 데워서 가져간답니다. 그래서 저는 휴게소에서 경주 꿀빵 등을 샀습니다. 도착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조금 지연되거나 하면 휴게소에서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행에 아무런 장애가 없어서 30분 이상 일찍 도착하여 편의점에서 따뜻한 국물을 마실 수 있는 컵라면을 먹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왜 화물차 기사님들께서 힘든 야간 운행을 하는지를 이번에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단순히 차가 적어서 길이 덜 막혀서 그럴 것이라 추측만 하였는데, 통행료 할인제도가 더 큰 이유랍니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를 심야시간이라 규정하고, 고속도로에서 운행하는 시간 중에서 심야시간 비율을 따져서 70% 이상일 경우 통행료의 50%를 감면해 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순천에서 김포까지 통행료가 3만 원이면 야간에 올라가면 1만 5천 원, 주간에 내려오면 3만 원이 되어 통행료를 1만 5천 원 절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차 하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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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마켓컬리 물류창고에 도착하여 보니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농생대 동창회 서병륜 회장님의 회사 로지스올이라는 로고라서 그런 겁니다. 무쟈게 반가웠습니다.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하차를 하여야 할 경우에는 도착하는 대로 빨리 하차를 해주는 것도 큰 혜택인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30분 정도가 경과되어서 하차가 된 뒤에는 부지런히 다음 하차지인 김포로 출발합니다.

21년 7월에 만난 임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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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를 나오는 순간 눈에 띄는 상호에 사람은 연상의 동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달 전에 구입한 주식이 이 회사 것이었습니다. 부디 건승을 빕니다. 조금 후 곤지암 읍내를 지나니 지난 7월 13일에 둘째 아들과 함께 만나서 광란의 밤을 보낸 임성혁 청아랑영농조합법인 사장이 생각나서 이른 시간이지만 전화를 하였습니다. 말로는 재미있게 산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참 가지가지한다고 생각하였을지는 모르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9시 30분쯤에 김포의 물류센터에 최종적으로 짐을 내리고 이제 기나긴 기다림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한눈팔 시간은 없습니다.

3. 다시 상차에서 순천까지

이제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가능하면 비싼 것을, 가능하면 빨리, 가능하면 가벼운 짐을, 가능하면 이동선이 비슷하도록 내려갈 화물을 24시 화물콜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상차지는 경기도 하차지는 전남으로 정해놓고 귀를 쫑긋하고 듣다가 혹시 관심이 가는 것이 있으면 앱을 확인해야 하기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고흥, 순천, 여수에만 관심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장성, 곡성, 구례 등 내려가는 길에 좋은 조건의 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고흥으로 가는 것을 3건, 여수로 가는 것을 1건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9일 순천에서 AFP 환경과 에너지위원회 세미나를 하기 전에 고흥군 도덕면에 있는 흥양영농조합법인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회사의 토마토 배송용 빈상자를 E마트 물류센터에서 싣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오후 5시에 상차를 완료하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2시간 정도를 달리고 15분 정도를 쉬면서 부지런히 내려옵니다. 무리하게 운전하면 피곤해서, 졸려서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므로 대형 화물차에는 운행 과정이 기록되며 이것을 정기적으로 제출하여야 한답니다. 그래서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2시간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으며, 졸리지 않아도 15분 이상이 지난 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답니다. 규제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계속적으로 새로운 규제가 생기는 이유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님은 보통 23시 이후에 도착하면 씻지도 못하고 자고, 22시 이전에 도착하면 씻기만 하고 자고, 21시 이전에 도착하면 씻고 소주 한잔 정도를 마시고 잔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21시 50분 정도에 도착하여 저랑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잤답니다. 싣고 내려온 짐은 다음날 오전 8시부터 12시 사이에 하차를 하고 또 그 뒤에 상차 물건을 구해서 상차를 마친 후에 다시 오후 다섯 시 쯤에 잠을 자고 밤 11시면 출발하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토요일 하루를 쉽니다. 이 글을 쓰는 1월 9일(일) 전날인 1월 8일(토)에 고흥에 놀러 와서 부부모임으로 소주를 한잔, 아니 두 병을 마셨습니다. 고흥으로 내려와서의 20년 우정을 확인하면서!

혹시 이틀 정도 일손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세요. 제가 생각보다 일머리가 있답니다.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도움이 제법 될 겁니다. – 고흥에서 항상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이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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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였고 중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2020년 9월 15일부터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산지조사위원으로 일하고있다. (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