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02 오후 127호(2021.01)

실화소설 ‘사막의 과학자’ 2
검찰청사의 촛불

검찰청사의 촛불

노광준 전 경기방송 피디, ‘방송이 사라지던 날’ 저자, 농화학 88

눈을 감자 저절로 그때 그 일이 생각났다. 대검찰청 1206호 조사실. 그곳에서 67일간 매일 출석해 검찰 조사를 받던 그 악몽 같은 시절, 한우는 그때 절감했다. 왜 검찰 조사를 받던 인사들이 대검찰청 창문으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하는지. 너무 억울하고 가족들한테 너무 미안한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계신 친구분께서 국내에서도 사업을 하고 계시대요?”

또 다른 젊은 검사가 노트북을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자세로 마주 앉아 있던 한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분 계좌로 5만 달러 보내셨던데 이거 연구비 맞죠?”

“아닙니다.”

“긴지 아닌지는 조사해보면 알 테고요…. 그나저나 친구분 사업도 많이 벌려놓으셨는데 저희 조사 들어가면 물어볼 거 많을 것 같은데요? 세금 문제도 그렇고”

“그 친구 많이 어렵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한우의 흔들리는 반응을 살피던 검사는 기회를 잡은 듯 제안을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솔직히 그 당시 교수님이 노벨 의학상을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국민들도 그렇게 믿으셨잖아요? 그 5만 달러를 교수님이 노벨상 로비자금으로 미국에 계신 친구분께 보내신 거예요. 교수님 개인 돈으로. 그러면 그거로 교수님은 횡령 의혹 벗고 친구분도 걱정 없이 사업할 테고 국민들은 아 그랬었구나 하면서 수긍할테고…. 오케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굿 초이스 아닙니까?”

한우는 그 제안을 받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친구를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검사의 제안을 전해 들은 한우의 변호인단은 난리가 났다.

“교수님 절대 안 됩니다. 이거 독배예요 독배”

“독이 든 술잔이라구요?”

“사실도 아니지만, 교수님이 그렇게 했다고 진술하는 순간 이건 외환관리법 위반이 됩니다.”

“외환관리법?”

“형법에서 외환관리법이면 그 자체로 징역이예요. 이거 빼박이라구요.”

“그럼 다시 연구를 못한다는….”

“사기횡령보다 더 무서운 거로 옭아매는 전략이라구요. 아이 씨…. 교활한 새끼들….”

한우는 그때 직감했다. 앞에 놓여진 선택지, 즉 친구를 지키려면 연구를 못하고, 자신을 지키려면 친구가 죽어야 하는 이 엿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죽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이후 그는 투신자살을 꿈꿨다. 대검찰청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에서 뛰어내릴지 복도에서 뛰어내릴지 창문을 눈여겨봤다. 1206호에서 조사를 받다가도 검사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창밖을 유심히 봤다. 그런데 그렇게 엿본 창문 밖 풍경이 놀라왔다. 신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밑에 점처럼 보이는 검찰청 정문 앞에 수십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줄기세포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의 촛불이었다. 어느 날은 수십 개, 어느 날은 수백 개의 촛불이 서초동 대검찰청 앞을 밝혔다. 촛불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자 검사들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우에게 말했다.

“교수님, 보아하니 저 밑에서 촛불 들고 계신 저분들 생업도 있고 가정도 있으신 분들인데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한 말씀해주시죠? 아시잖아요. 저희 수사란 게 저런다고 영향받지 않는다는 거”

그 말에 한우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검사님, 저분들이 일당받고 오신 분들도 아니고, 제가 오란다고 오고 가란다고 가는 그런 분들입니까? 제가 돈 한 푼 없지만 설령 돈 준다고 해서 한겨울 댓바람이 몰아치는 서초동 청사 앞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저렇게 서계십니까?”

촛불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고 수도권에 사는 전업주부들은 낮에도 모여서 피켓시위를 했다.

“검사님들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국민의 뜻이 정의입니다. 공정 수사해주세요”

그 외침과 촛불의 행렬이 한우를 살렸다. 오헨리의 작품에서 마지막 잎새가 생을 포기하려던 화가의 목숨을 구했듯이 한우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검찰청사 앞을 밝혀주던 수십 개의 촛불을 보며 생의 의욕을 얻었다. 한우가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새벽 두 시까지도 검찰청사 앞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한우는 그 광경을 검찰청 12층 조사실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봤다. 그것은 마지막 잎새였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 그 촛불이 한우로 하여금 생을 지속하게 했다.

한없이 고마웠다. 그리고 한없이 미안하기도 했다. 마침내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던 날, 예상대로 검찰은 한우를 사기 및 횡령으로 기소한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검찰청 앞을 조용히 밝히던 촛불의 행렬은 분노와 오열의 난장판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들은 검찰청사를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설을 해댔고, 어떤 여성들은 한우가 탄 차량을 향해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힘이 없어서….”

한우는 그분들을 향해 연신 합장을 올렸다. 고맙다고, 여러분 덕에 저는 목숨을 건졌다고, 꼭 연구결과로 오늘 흘리신 눈물자국을 닦아드리겠다고….

그 장면까지 떠올랐을 때 한우는 번쩍 눈을 뜨고 일어섰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시계부터 찾았다. 벌써 새벽 4시45분. 한우는 고양이 세수를 하고 두툼한 외투를 단단히 차려입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휘잉, 밖에는 영하 20도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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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농화학과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파던중 BBC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 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유튜브 기획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경기방송 PD로 재직당시 ‘현장의정포커스 –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대책편’으로 제38회 한국방송대상 지역시사보도제작(라디오) 부문 작품상 수상했다.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