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09 오후 127호(2021.01)

나 이렇게 산다
인연의 고리

인연의 고리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2021년 12월 4일은 서민동 산악회 주최로 관악산을 다녀왔다. 1조는 관악산 연주암까지 가는 코스이고 2조는 낙성대 방향에서 관악산 둘레길을 걷는 둘레길 코스였다. 나는 당연히 둘레길을 택했다. 이 코스는 처음 가봤는데 길이 매우 아름다워서 걷는 기분이 쏠쏠했다. 온통 낙엽이 폭신하게 덮여있는 길을 계속 바스락 소리를 내며 걸었다. 23명을 두 팀으로 나눴는데 우리 팀은 10명이 같이 걸었다.

나와 서울대학교와의 인연의 고리는 초교 2학년 때인 1959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축 청부업자인 아버지가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건물 하나를 지어야 했기에 가족들이 모두 영등포에서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생들이 운영하는 서둔 야학을 다녔다. 서둔 야학 선생님들이 너무 좋았기에 1970년부터 1978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반직으로 근무했다. 유신헌법 철폐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바친 김상진열사기념사업회를 후원하다 보니 서울대 민주동문회에 옵서버 회원으로 가입하게 됐다. 이후 서울대민주동문회 여러 회원분이 2019년에 있었던 내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의 북 콘서트에 와서 출판을 축하해 주셨다. 장원택 서민동 회장님을 비롯해서 정의연대 회장 김상민 교수님, 김상진기념사업회 정근우 회장님 등 주로 서울대 공대와 농대 졸업생 여러분이 와서 서둔 야학 이야기를 담은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의 출판을 축하해주셨다.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을 좋아했는데 원 없이 공부 잘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교인 서울대학교를 나온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나는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들이 어찌나 재미있고 위트가 넘치는지 어제는 배꼽이 빠져서 달아났다가 간신히 도로 제자리를 찾은 듯싶었다.

서민동 회원 중 전 선생님이 아는 교수님과 동석해서 회식이 끝났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교수님께 설명해서 음식값을 내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내고 말았다’라는 전 선생님의 말씀이 하도 웃겨서 눈물이 다 났다.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교수님을 설득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였다.

국립 서울대학교

​1960년대 처음 만난 서울대 뺏지는 환상이었다. 어찌나 멋지고 반짝반짝 빛났는지 모른다. 서울대 뺏지 중앙에 새겨진 ‘진리는 나의 빛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eritas lux mea!(베리타스 룩스 메아) 또한 서둔 야학 시절 야학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을 즐겨라’라는 뜻의 Carpe diem!(카르페 디엠)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라틴어이다.

나라와 민족

나라와 민족! 그 헤엄칠 수도 없는 거대한 ‘이상의 바다’에 빠져버린 것은 서둔 야학 시절이었다. 먹고살기가 너무 힘든 그 시절에도 나라와 만족을 잊어버리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가르쳐주신 70대 중반의 은사님들은 대부분 정통 보수우파라는 사실이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현직 수의학과 남 교수님은 지도교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골수 우파인 이 교수님이 야학 활동을 하셨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요!”

1960년대는 운동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야학 선생님들은 순수하게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을 가르쳐주고자 하는 열정과 사랑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대는 왜 서울대학교에 가셨나요?

우리가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이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 해도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라고. 우리나라는 지금 검찰 공화국이다. 검찰의 굳건한 악의 카르텔을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나라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혼자만의 부귀영화를 꿈꾼다면 그 공부가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 투쟁하는 서울대학교 민주동문회에 기대하는 바가 자못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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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