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08 오후 118호(2019.10)

임은경이 만난 사람
“가능성 많은 지역 방송사의 제자리 찾기 싸움”
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여름이 한창이던 지난 8월 12일, 갑작스런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만일 뉴스에서 저의 이름을 보게 되신다면, 이거 하나만 알아주세요. 외부세력 없습니다. 노리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편성책임자로서의 직무에 충실하고자 할 뿐입니다. 한 방송사의 편성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국민들의 것이기에. 후적박발(厚積薄發), 쌓일 만큼 쌓였습니다. 이제 뚜벅뚜벅 갑니다. 노광준 올림.”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뒤인 8월 13일 ‘미디어오늘’과 ‘노컷뉴스’ 등 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경기도 지역의 공중파 라디오 방송인 경기방송의 총괄본부장이 부적절한 언행과 비민주적인 회사 운영으로 내부고발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부고발자가 바로 노광준 피디(외 1명)였다. 『선구자』 고정필진인 노 피디는 20여 년간 근무한 경기방송에서 현재 편성제작팀장을 맡고 있다.

이후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사태는 급물살을 탔다. 언론 보도 직후 경기방송 노조가 사퇴를 요구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회사 측은 8월 19일 대표 이사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내고 “해당 간부는 사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며 수습에 나섰다. 현 아무개 본부장은 8월 22일 사직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9월 25일 상황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회사 측이 사퇴한다던 현 본부장을 오히려 전무이사로 승진시키는 대신, 내부고발자인 노 피디와 윤 모 기자(보도 2팀장)의 징계에 나선 것이다. 회사는 두 사람을 대기 발령하고 10월 7일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하지만 언론과 경기도 시민사회의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0월 12일 현재까지 징계위 결과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노광준 피디와 윤 모 팀장은 왜 같은 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상사를 내부고발할 수밖에 없었을까. 아직 여름의 온기가 남아있던 10월 3일, 노 피디의 집 근처인 수원 광교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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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하겠다던 간부는 도리어 승진, 내부제보자는 징계

“8월 5일 월요일이었어요. 매월 첫 번째 월요일은 아침 열 시에 확대간부회의가 있어요. 회의 후 차장급 이상 간부들이 사장님, 본부장님과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였죠. 현 본부장이 그 자리에서 5~6분간 혼자서 연설하다시피 말을 했어요. ‘문재인이 때려죽이고 싶다’는 말로 시작해서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일본 불매운동을 성토하는 얘기였죠.”

현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 불매운동은 지난 백년 간 성공한 적 없다. 국채보상운동, 물산장려운동이 성공한 적이 있었나. 아사히 맥주 사장이, 유니클로 사장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당시 국민감정과 정반대되는 발언을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집권 세력을 두고 ‘우매한 국민들을 속여서 반일로 몰아간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 식사 자리 후 노 피디와 윤 팀장은 심각한 고민 끝에 이날 현 본부장의 발언을 외부 언론에 제보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날 점심식사 때 나온 발언 하나만 가지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이와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한국 정부가 이상한 일을 해서 경제를 망가뜨린다’거나, ‘일제 강제 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완전 잘못’이라는 둥.

“문제는 이분의 말에 대해서 누구도 토를 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자기와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서 용납을 안 하니까요. 이분이 총괄본부장이 된 후 지난 6년간 인사발령이 많았어요. 직원 입장에서 보도, 제작 총괄에다가 내 인사권까지 갖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거스를 수가 있겠어요.”

현 본부장의 제왕적 독재 권력은 그동안 회사 안팎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특근수당을 아끼기 위해 공휴일에 기자 전원을 휴무시키고 종합뉴스를 없애는가 하면, 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과거 기사(현 본부장의 비정규직 남용 갑질 기사)를 언급한 부산일보에 대해 자사 기자를 시켜서 해당 기사를 내리라고 압력을 넣고 욕설 및 소송 협박을 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경기방송의 예산과다 문제를 지적한 정의당 추혜선 의원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쓸 것을 지시하고, 담당 기자가 경기방송의 입장 및 상황 악화를 우려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자 욕설과 함께 ‘기사를 쓰지 않으면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은 구체적인 정황 및 관련 인물의 실명이 모두 자료로 확보되어 있고,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저는 제작 팀장이자 편성책임자예요. 편성 책임자의 제 1역할은 편성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거죠.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사장과 제가 출석해요. 그런데 그날 점심 식사 발언 후, 더 이상 이걸 계속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앞으로 이와 관련한 보도 지시, 시사 프로그램 제작 지시를 내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태까지 그래왔듯이요.”

이 논조가 보도나 프로그램에 반영이 되면 경기방송이 청취자들에게 완전히 불신을 당할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보도 2팀장 윤 모 기자와 함께 고민고민하다가 언론에 제보를 했다. ‘혼내줘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기방송이 잘못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뜻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앞으로 기나긴 힘든 싸움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소유경영 분리 원칙 위반, 제왕적 권력 휘둘러

8월 13일 언론 보도가 나가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과 경기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등 지역사회 단체들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8월 16일에는 경기방송 노조에서도 현 본부장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결국 현 본부장은 8월 19일 전 직원 총회에서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고 추석 전후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경기방송 사장 명의로 대국민 사과문도 발표됐다. 하지만 승리는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현 본부장이 사내소통망에다 저희 두 사람을 비난하는 글을 계속 올리더라고요. 7년 전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할 당시 저와 윤 기자가 노조집행부였는데, 우리 둘이 소위 ‘살생부’를 만들어서 회사에 갖다 바쳤다면서 저희를 비난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당시 노노 갈등을 일으키던 직원들에 대해 징계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낸 거였거든요. 말도 안 되는 얘기라서 우리는 아무 대응을 안 했어요. 내일모레 나갈 사람인데 뭐 하러 괜히 대응을 하나 싶었던 거죠.”

그러나 여론의 방향은 어느새 반일 국면이 사그라들고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현 본부장으로서는 전열을 새롭게 가다듬을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추석을 전후해서 사퇴하겠다던 그는 추석이 지나도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대신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밀고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내여론을 일으켰다.

“9월 25일 이사회 명의로 ‘경기방송 임직원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가 나왔어요. ‘주주 70%가 현준호 본부장에게 일임을 했다. 퇴사하지 말고 밀고자들을 처벌하고 회사를 수습하라고 했다’는 요지의 성명서였죠. 그런데 주주 70%란 게 대주주 서너 사람을 설득한 거예요.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는 ‘허위 제보를 해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언론 탄압 및 재산상 손실 등으로 회사를 도탄에 몰아넣었다’며 대기발령을 내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요.”

노 피디는 현 본부장이 다른 직원들에게 일종의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더 강하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와 피디로 구성된 경기방송 노조가 이번 일에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기방송 노조는 8월 16일 성명 발표 외에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 본부장은 경기방송 기자를 거쳐서 본부장까지 올라간 분인데, 이사회의 등기이사이자 경기방송 주주이기도 해요. 방송법의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을 위반한 거죠. 여기에 보도팀장, 제작팀장, 경영팀장, 기술팀장을 다 총괄하는 위치에 있어요. 사장은 임기 2년을 채우면 떠나지만, 이 분은 임기가 없어요. 현 사장과 전임 사장도 이 분이 영입해온 분들이고요. 한마디로 실세죠.”

현 본부장이 총괄본부장이 된 과정도 불공정 투성이다.

“방송국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3년에 한 번씩 재허가를 받아요. 올해 12월이 마침 재허가를 받는 시기라서, 제가 재허가 서류를 작업하다가 기막힌 일을 발견했어요. 2013년에 방통위에서 경기방송에 시정명령을 내린 일이 있더군요. 그 내용이 당시 현 본부장이 보도국장과 경영국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 겸임을 해소하라는 것이었어요.”

기업에서 광고를 따오는 경영국장을 하면서 보도 데스크인 보도국장까지 겸하면 뉴스가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방통위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방송을 계속할 수가 없다. 현 본부장은 방통위의 명령에 따라 겸직은 해소했으나, 대신 ‘총괄본부장’이라는 자리를 새로 만들어 스스로 그 자리에 취임했다. 보도와 경영뿐만 아니라 제작, 기술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더 큰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방통위 시정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직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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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원직복직만이 아니다, “끝까지 싸울 것

‘큰일’을 일으키고 나서 뜻하지 않은 휴가를 갖게 된 노 피디의 얼굴은 생각 외로 담담해 보였다. ‘지금 쓰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더 매진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안식휴가를 받은 기분이라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선구자』에 연재 중인 「실화소설 과학자」 원고는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이다.

“일단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서 실업급여 받는 것을 알아보고 있어요. 만약 해고가 된다면 저희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 신청을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당연히 복직을 해야겠죠. 법률 자문 등을 통해 알아보니, 해고될 경우 부당해고이기 때문에 원직복직이 어렵지 않을 것 같더군요.”

올해 12월 방통위 재허가 심사에 대해서도 대비할 생각이다. 방통위의 요청이 있을 경우 이번 일에 관한 사실관계 자료를 보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경기도의 시민단체 및 언론과 함께 계속 대응을 해 나갈 예정이다. 목표는 단지 원직복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기공동행동, 민주노총 경기본부 등 경기도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6일 공동성명을 통해 “현준호 본부장 사퇴가 없는 한 오는 12월 방송 재허가 심사 때까지 반대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또 제보자(노 피디, 윤 기자)에 대한 징계절차를 백지화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광고 후원을 중단하라고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우리는 이왕 하게 된 것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회사로 돌아간 뒤에 현 본부장이 가만있지 않겠죠.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불이익을 줄 거고, 그럼 우리도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걸고 싸울 거예요. 그렇게 싸우다 보면 역사의 흐름이란 것이 한번은 다시 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김상진기념사업회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하자, 노광준 피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게 가능성 많은 한 지역 방송사의 제자리 찾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지자체, 경기도의 건실한 지역 방송사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 이제 막 시작된 거죠. 지역방송사가 지역방송사답게 방송을 하면 이 치열한 미디어 경쟁 속에서도 절대 안 망해요. 지역민하고 호흡하는 방송사는 잘 할 수 있어요. 저희 상황을 계속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면 저희가 더 좋은 방송사로 제자리를 찾는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임은경 _ 대학 졸업 후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글쓰기여서, 아무래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되지 싶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는 선구자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atree12fly@daum.net)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