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이 ‘김상진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90분 분량의 다큐와 극을 결합한 영화이다. ‘최종 산출물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 또한 영상의 시대에 더할 나위 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는 안 소장은 뜨거운 여름 동안 김제에 있는 이야기농업연구소에서 ‘김상진’이라는 주제를 끌어안고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SNS에 올린 그의 이야기를 갈무리해 독자들과 김상진 영화 제작 소식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9월 8일
조국 청문회 과정에서 보듯 지금 이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다. 뽑히지 않은, 암기해서 시험 본 행적조직(검찰)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대들고, 진작 도태되었어야 할 자한당이 좀비가 되어 거리를 활보한다.
이 미친 세상의 원죄는 4.19혁명을 5.16군사쿠데타로 되돌려 친 박정희에게 있다. 유신헌법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한 박정희 정권이 꼭지점을 향해 치닫던 1975년,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저항할 수 없었다.
그때 자신의 배를 갈라 유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간 바른침, 김상진 열사가 있었다. 26살의 청년, 대학생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흔들었다. 한국현대사에 뿌리내린 박정희의 독소를 뽑아내는 시점은 내년과 후년이 될듯하다. 그에 맞춰 김상진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1987〉은 이한열 열사, 〈1991,봄〉은 1991년 봄(5월)에 산화한 아홉 분의 열사가 모티브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1975,김상진〉은 다큐극영화로 1970년대를 풀어낼 계획이다. 지금은 설계 단계로 구성안 작업 중이다. 현재 진행률 80%다. 마무리되면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10월 중에 최종본을 추출해낼 계획이다.
영화제작자로, 감독으로 김상진 형을 어떻게 그려야할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1983년 6월, 군대에 강제징집 당하던 날, 수원경찰서 보안 분실, 전날 밤을 기억한다. 상진 형과 나누었던 가상대화. 무릎 꿇고 살지 마.
상진형님은 우리보다 한발 앞에서 선연하게 걸어가는 ‘시대정신’이었다.
‘시대정신’을 키워드로 영화를 설계중이다.
8월 19일
김상진 형과의 대화 – 김상진 열사의 ‘뜨거운 갈채’를 기다리며
나는 서울농대 79학번이다. 1981년 학내시위사건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아 학교에서 배제 당했다. 1982년 하반기, 1년 만에 복교하여 80학번들과 학내 운동을 수행했다. 2학기와 겨울을 넘기고 다음해 1983년 6월 8일, 서둔동 자취방에서 80학번 교내시위 배후조종 혐의로 연행되었다.
수원경찰서 보안 분실에 닷새간 감금되었다가 13일 전격적으로 강제 징집 당했다. 담당 경찰과 보안대요원과 함께 철원 김화 백골부대 신병교육대로 찝차를 타고 입대했다. 엿새간의 침묵. 친구(한희철)를 비롯 강제징집 의문사가 줄 이은 직후라 마음을 다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 안에서 부모님, 여자친구, 친구들 생각으로 수십·수백 번 짧았던 대학생활을 돌리고 또 돌려 파노라마로 보았다. 그때 김상진 형 생각도 많이 했다.
“형님, 79 안병권입니다. 이 허허로운 마음을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요? 앞으로 다가설 현실은 ‘막무가내 부당함’일 텐데 어떻게 대응해야하죠?”
“무릎 꿇고 살지 마!”
형님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덕에 80년대, 90년대를 한껏 살아내고 촛불시민혁명의 파고를 넘어 2019년을 품고 있다. 내 하는 일의 연속성과 시대의 요구가 맞닿아 김상진 열사 스토리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지금은 ‘서사 설계’ 단계. 조만간 시놉시스까지 마무리한다. 엄혹했던 1975년, 박정희 유신독재의 심장을 향해 찔러간 열사의 삶을 영화로 만드는 일은 내게는 ‘영광 넘어 영광’이다.
최근에 다시 김상진 형님을 찾아갔다.
“형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형님 덕분에 남겨진 우리들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시대의 질곡을 하나 둘 벗겨내면서 각자의 삶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44주기 추모제때 형님의 이야기를 영화로 세상에 남기자는 결의를 했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다 지나간 시절, 먼 이야기까지 영화로 만들려고 하시나? 여러 사람 번거롭게스리…….”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의 시대에 걸맞은 형님의 스토리를 갖고 싶어 해요. 어찌 보면 우리 역사의 요청이기도 하구요. 질문, 아니 허락을 하나 받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태어나서 스물여섯 나이에 할복자결하신 날까지를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과 남겨진 사람들 각자의 삶터에서 형님의 뜻이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했는지도 이야기할까요?”
잠시 생각에 빠진 상진 형.
“…….”
“돌이켜보니 내 짧은 생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네. 지금 와서 명확해졌지만 ‘친일과 배신의 화신’ 박정희 종신독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네. 그해 4월 들어서 시작한 열흘간의 고뇌와 어떤 결정은 10년, 100년 세월만큼 길고 깊었다네. 그때의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은 더 이상 없었으면 했네. 하지만 80년대, 90년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분신, 고문, 투신, 의문사)되어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네.”
“좋네! 내 이후의 불의한 시대와 맞장 뜨는 또 다른 삶들로 이어지도록 해주시게. 우리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네. 결국 2016~17년 촛불시민혁명으로 우리조국은 민주화 여정에서 세계사적 역사의 물꼬를 텄네. 그때 난 저 지하에서 박수를 쳤었네. 하지만 ‘뜨거운 갈채’는 보내지 않았지. 박정희 이명박그네 잔당들이 아직 준동하고, 일본의 경제침탈이 예사롭지 않아서네.”
“저들마저 끌어내리면 조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되는 거겠지. 남·북한평화체계가 완성되는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저 지하에서 내 영혼은 눈이 뜨여 소리 없는‘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형님, 그 기개와 울림은 여전하시군요.^^ 형님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역사가 되었는지도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러시게, 자네도 잘 가시게.”
먼저가신 분들의 희생과 어떤 뜻이 만들어준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지금’이다.
상진 형님의 생각이 고맙고 고마운 요즘이다.
7월 25일
비빔밥과 즐거운 상상
멀리 김포에서 장PD와 김숙영 작가 내외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야기농업연구소에 왔다. 김 작가가 기본으로 설계한 김상진 영화 시놉시스를 같이 나누고, 향후의 일에 대하여 의논하기 위한 자리다. 와이프가 차려낸 비빔밥과 글쓰기 농부님이 만든 찔레술로 낮술도 서너 잔 겸했다. 박정희 유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간 ‘바른침’ 김상진 열사를 영화로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열사 큰형님이신 상운님께서 지난 추모제때 유품과 사진자료들을 한 보따리 건네주셨다. 하나하나 살피고 사진자료로 기록하면서 ‘한 사람이 남긴 무늬’를 새삼스러워했다. 우리들은 유쾌하고 즐겁게 ‘존엄한 김상진’을 상상했고 이야기 나누었다. 열사의 사랑과 고뇌, 결단, 천진난만, 뜨거움에서 돌아가시기까지의 여정이 한편에 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갔다 할 일이 남았다며 다시 세상으로 내려온 김상진.
박정희의 몰락과
80년 민주화의 봄과 5.18
87년 6월항쟁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민주주의를 향한 가없는 질주
마침내 2016~17년 촛불시민혁명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리고
2018~19년 남북정상은 두 손을 맞잡는다.
일본의 경제 침탈로 다시 시민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필요한 지금까지 김상진은 우리 곁에 있었다. 삶이 애매할 때 판관 ‘포청천’이었고, 굴종과 주체의 갈림길에서는 바른 길 ‘이정표’였고, 미지근하게 살지 말라 뜨거운 ‘용광로’였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1979년 대학 입학 이후 60이 된 지금까지 내 삶터에서 김상진은 수리수리 마수리 손오공이었다.
상진 형이 남겨주신 팩트에 여러 가지 상상을 보태 ‘기억에 남는 김상진’이 아니라 퍼뜨리기 좋은 김상진’으로 스토리텔링하려는 것이다. 즐겁고 유쾌하게 이 시대가 ‘청년열사 김상진’을 소비하게 하고 싶다. 친일과 유신의 잔재를 끊어내고 싶어서다. 그때가 되면 상진 형은 하늘로 다시 올라가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보낼 것이다. 내가 김상진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자 결과다.
안병권_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세상에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