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22 오후 118호(2019.10)

오정삼의 人 in 人
청년들을 許하라

오정삼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 농경제 79)

필자가 일하고 있는 (사)삼양주민연대가 20주년을 맞이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시 삼양주민연대 20주년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997년 IMF 외환 위기와 함께 한국사회는 대량실업과 빈곤의 심화라는 문제를 맞이했다. 사회적 충격도 어머어마했다. 대기업들은 연쇄부도를 일으켰고 봉급생활자들은 직장을 떠나서 거리를 떠도는 실업자로 전락했다. 서울역 인근에는 노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1999년 국회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고, 2000년 10월 1일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실시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1998년 11월 노원-강북-성북 지역에서 저소득 주민들의 실업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이 결성되었다. 1999년 1월에는 ‘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가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삼양주민연대의 전신인 셈이다. 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저소득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생활 문제에 관련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주거복지,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 정신에 기반한 공동체 지원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삼양주민연대의 20주년은 강북구에서 더욱 뜻 깊은 행사였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데 적지 않은 20~30대 청년들이 참여했다. 20주년 사업을 주관했던 나는 마치 내 일처럼 행사 준비에 나섰던 청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자발적인 창의력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조직이 그들에게 역할을 주고, 그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줬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해”가 아니라 “그렇군요”라는 긍정적 수용과 공감이 이들의 열정을 높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사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의 변두리에서도 일하는 청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도시의 변두리는 여전히 한집 건너 하나씩 미용실과 핸드폰 가게, 그리고 교회만 즐비한 기형적인 경제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청년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지역을 발전시키고 공동체 협력과 연대 사업을 하려고 해도, 의욕이 넘치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는 지역경제가 선순환(善循環)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역과 청년이 함께 협동해서 만드는 캠퍼스타운 사업이나 청년들의 창업활동을 돕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지역에 삶의 기반을 두고 정착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나마 어렵사리 지역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청년들조차 소위 어른(?)들과 함께 얼마간 일을 하다보면 애초의 초롱초롱하고 활기찬 낯빛이 사라지고 어느새 떠나버리곤 한다. 이미 ‘경험이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꼰대化된 세대들이 사회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식의 언어 폭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20~30대의 청년들로서는 권력자들이 열정 많은 값싼 노동력을 자신의 장력 안에 넣으려는 의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왜 우리는 ‘충고는 제일 잘 된 것이 자신이 간 데까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청년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뭉개버리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이미 고정관념으로 화석화돼버린 자신의 경험이 “먼저 알고 있는 것은 다 오류다”라는 명제를 가로막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따금씩 하는 말 중에 40대-不惑은 혹하지 않고, 50대-知天命은 하늘의 뜻을 알고 있으니 남의 말을 절대 듣지 않으려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보다는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증가하기 때문에 추론이나 패턴지각, 개념형성 능력은 떨어지고 추상, 장기기억, 회상, 재인(再認) 능력만 발달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40대가 넘으면 진짜 남의 말 안 듣고 꼰대 짓만 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마음이 불편한 독자들이 생겼을 듯하다. 그러나 나는 청년들의 어두운 낯빛을 누가 만들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현 정부의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 사법개혁과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드러난 20~30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감은 아무리 외면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조국 장관에게 불법은 없었고 그가 사법개혁의 적임자임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청년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실망감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조건의 평등’까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편적 복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 청년들의 눈에 조국 장관의 자녀 문제는 기회는 평등했으나 조건까지 평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90년대 생이 온다』라는 책을 청년들과 함께 읽었다. 밀레니얼 세대인 20대 청년들이 소위 ‘공무원세대’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 앞에 남아있는 출신과 배경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정한 경쟁의 場은 공무원 시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들과 함께 오연호 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강연을 들었다. 행복지수 1위라는 덴마크 시민들의 행복의 비결은 그 사회가 자유, 평등, 안정, 신뢰, 이웃, 환경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를 깊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20대의 열정과 신념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현재의 20대 청년들 또한 옳다고 인정해줄 수 없을까? 그들의 밝은 얼굴이 지역과 사회를 더욱 환하게 비출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없을까?

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pine@chol.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