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시절이 시절인지라 조국 장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조국 장관 임명에 반대했던 입장입니다만,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절박함 또한 이해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장관이 검찰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상황이라 사퇴든 경질이든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기고 당일 10월 10일 현재) 장관의 퇴진이 곧 개혁의 후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검찰개혁’이라는 두루뭉술한 명분을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목표로 전환해,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퇴장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임명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이것이 최선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번 사태로 드러난 계급 세습과 불평등 재생산 구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이를 마치 조국 장관 임명과 분리된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연구소 ‘씽크와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조국 장관 임명 찬반 입장에 따라 이번 사태를 달리 규정합니다. 임명에 찬성하는 응답자들은 검찰개혁(30.9%), 언론개혁(28.1%), 적폐청산 필요성(14.4%)을,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불평등 사회구조(34.4%), 586의 위선(30.1%)을 이번 사태가 던진 주요 화두로 꼽았습니다.
이는 검찰개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언어가 겉도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사람에게 검찰개혁의 당위만을 얘기해서는 설득이 불가능합니다. 불법이냐 아니냐도 여기서는 쟁점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1일 조국 장관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과 관련해 처음 메시지를 내놓았습니다. 다행히 검찰개혁의 당위만을 되풀이하지도 않았고, 법적으로 문제 없으니 괜찮다는 얘기도 이때는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에 우호적인 시민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나름의 이유를 찾아 제시했습니다. 지금의 대학 입시제도가 “특히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깊은 상처가 되고 있다”며 “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진단이 완전 잘못 되었습니다. 입시제도는 병의 증상일 뿐 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교육의 실패로 간주하는 시각은 한국의 엘리트들만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진보적 언론인인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는 『똑똑함의 숭배: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갈라파고스)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그 부작용을 더 이상 외면하기가 어려워지자 우리는 점점 더 교육제도를 중시하고 있다. 학교 개혁에 성공하면 ‘성취의 격차’를 없애고 갈수록 멀어지는 기회의 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체 사회가 저지른 죄를 학교에게 속죄하라고 한다. 그리고 학교가 과업을 다하지 못하면 학교에 희망이 없다며 규탄한다. (…) 특히 교육개혁을 위한 어떤 정책은 현재 참담할 정도로 무너진 기회의 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엘리트 계층의 공통적 인식이다.”(334쪽)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도 「‘입시 문제’에는 답이 없다」(한겨레, 2019.9.24.)는 칼럼에서 같은 주장을 내놓습니다. 그는 “최선의 입시제도를 찾자는 논의 자체가 핀트가 빗나간 것이거나 핵심을 회피하는 접근”이라며, “입시는 교육(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부의 획득, 지위의 상속 문제이며 일종의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모든 교육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안을 만들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 패자부활의 어려움, 사회적 평가체제의 부재 등”을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이는 계층 고착화의 한국적 특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굉장히 작습니다. 물론 검찰개혁도 필요하고,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일도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서초동과 광화문의 함성에 묻혀 있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로 나눠져 싸우고 있는 사이에 우리가 풀어야 할 더 중요하고 시급하며 근본적인 문제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봐야 합니다.
‘지위와 부의 세습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교육제도는 어떻게 가능한가? 공정한 사회는 기회의 평등만으로 충분한가?’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이것들이야 말로 ‘너는 누구 편이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섭 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