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9:12 오후 118호(2019.10)

청년, 미래를 꿈꾸다
녹두거리 12년 史 (2008~2019)

박선아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농경제 08)

오늘 갑자기 농경사 과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 잠깐 들러 교수님을 뵙고 다시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잠깐 한국에 들린 건데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다다음달에도 한국에 오니까 꼭 보자고 꽤 긴 수다를 떨었다. 12월은 추우니까 녹두거리 동학에서 동동주에 감자전을 먹자며, 꼭 어제 보고 헤어진 친구마냥 그랬다. 그 친구와의 연락 후 생각해보니, 우리의 즐거운 시간은 모두 녹두에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학부생 시절 추억과 흑역사를 쌓아갈 때 녹두는 그 자리에 있었다. 활기찬 녹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은 ‘밤 10시’이다. 3월마다 밤 10시가 되면 녹두 거리가 대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술집이 한정되다보니 녹두상인연합회에서 10시는 2차 가는 시간, 12시는 3차 가는 시간으로 정해놓았다더라. 밤 10시의 풍경은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길에 우르르 응원 나온 때처럼 활기가 넘쳤다. 2009년까지만 해도 우르르 나와서 과가를 부르면서 경쟁하던 문화도 있었다.

녹두 가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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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가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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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0년부터인가, 길거리에서 과가를 떼로 부르는 것이 나부터 조금씩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진부한 설명이겠지만, 대학사회가 점점 조용해진 시기와 일치한다. 2010년대 초반에는 녹두에 카페가 들어섰다. 지금이야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 일상적이지만, 당시에는 한남운수 차고지 옆에 카페베네가 생겼을 때 누군가 “문화 충격”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오늘도 수많은 카페에 빽빽이 앉은 학생들을 보며 나는 종종 ‘서울대 도서관을 녹두까지 확장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1~2년에는 카페와 독서실의 중간쯤인 ‘스터디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고시인구가 줄어들면서 녹두의 인구도 매년 급격히 감소했다. 또 서울 출신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대학생들의 개강파티는 서울대입구역으로 이동했다. 평균적인 소득이 높아져서 일까, 녹두 대신 서울대입구역 오피스텔에 사는 학생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제 녹두의 건물주들은 학생 대상 원룸이 인기가 없자, 건물을 부수고 신혼부부용 빌라를 늘렸다.

서울에서 모든 물가가 가장 싼 녹두에 이제 신혼부부들이 관심을 보인다. 10년 전에 대학생이었을 사람들이 지금 신혼부부가 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게 녹두는 열혈 청년에서 철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캠퍼스 타운 사업, 경전철 사업 등 어떻게든 이곳을 개발하려는 분위기 속에 녹두가 세속화되어가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대학시절 추억이 깃든 공간이 새로운 건물로 채워진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자세히 보면 이곳에도 시간과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 녹두거리의 마지막 학사주점, ‘녹두호프’는 올해 개업 25주년 파티를 했다. 점점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 운영이 어렵지만, 학생운동의 역사는 아직도 녹두호프에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녹두호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도 있다.

녹두호프에서 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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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5번 버스가 들어오는 녹두 입구에는 ‘아쎈 헬스장’이 있었다. 올해 16년이 된, 녹두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 헬스장은 바로 일주일 전 재건축으로 인해 문을 닫았다. 서울대생만 해도 20여년에 걸친 학번들이 다녔으리라. 그런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을 가장 슬퍼한 사람은 헬스장 주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슬픈 이별편지 같은 폐업 공지사항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자칭) 녹두 이장님으로서 손님이 왔을 때 어딜 데려갈까? 하나 꼽자면 ‘동차합격’이다. 녹두에서 10여년 이상 살아남은 음식점은 손에 꼽히는데, 동차합격도 그 중 하나이다. 국가고시 1차, 2차를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다는 간판을 단 음식점도 전국에서 찾기 어렵겠지만, 시대를 앞서나간 1인분짜리 버터철판삼겹살은 녹두의 자랑거리이다. 녹두에 찾아온 손님과 더 걸을 수 있다면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온 사장님이 학생들에게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이고 싶어 매일 연구 중이신 ‘스테미나 식당’, 전국 최초의 독립영화 상영관 ‘자체휴강 시네마’, 그리고 녹두 한 복판에 조성된 박종철 거리와 담벼락을 설명해줄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10년이 넘게 살게 되면서 녹두거리에 대한 생각도 다양해진다. 나에게 녹두거리란 청년이 사회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통로는 안정되지 못해 불안하지만,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기에 또 매력적이다. 조금은 답답했던 녹두라는 작은 공간이 생각보다 열린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박선아 _ 농생대 농경제사회학부 지역정보전공 08학번. 길었던 학부생활을 지나 지금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농촌, 지역과 사람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입니다. (2468nice@gmail.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