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호 (아시아 산림협력기구 프로젝트 매니저, 산림자원 92)
지난 8월 말 갑자기 미얀마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 교육훈련센터로 파견 명령을 받고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무작정 미얀마 생활을 시작했다. 사무소의 숙소에서 먹고 자고 밤샘작업을 하면서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직도 미얀마의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하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국가 중 하나지만, 주변에 미얀마를 방문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 대륙 사이에 위치한 미얀마의 정식명칭은 미얀마 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북동쪽으로는 중국, 북서쪽으로는 방글라데시 및 인도와 남동쪽으로는 타이, 라오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말레이반도를 따라 내려간 남북의 길이는 약 2,050km이고, 동서로 가장 넓은 곳의 길이는 935km 정도에 이른다. 총 면적은 678,500㎢로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 중에서 제일 크고, 세계에서 40번째로 크다.
1948년 1월 4일 100여년의 영국의 식민지배 하에서 독립하면서 국호를 버마연방으로 했다가 1989년 미얀마연방으로 개칭, 2010년 11월 현재의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변경했다. 미얀마에는 버마족을 비롯한 130여개의 부족이 살고 있으며, 행정구역은 버마족이 거주하는 7개 구획(divison, taing)과 소수 종족이 거주하는 7개 주(state, pyine)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네피도로 2005년 11월 6일 미얀마 군사정권이 행정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이전했다.
AFoCO 교육훈련센터는 양곤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양곤주 모비 지역에 위치해 있다. 2018년 7월에 문을 연 이후 AFoCO 14개 회원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산림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도 2018년부터 본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이다. 올해 9월에도 산림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미얀마의 열대림과 국제산림 협력에 대해 배우기 위해 센터를 방문했다. 첫 미얀마 방문이라 모두들 이번 연수기간 양곤의 명소들을 본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인 불교 성지인 쉐다곤 파고다 근처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있다.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가 그것이다. 양곤의 문화유산을 방문하기 전, 학생들에게 1983년 미얀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폭발테러 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인들이 태어나기 전이라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필자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린 나이에 일어난 일이라 아웅산이 미얀마에 있는 유명한 산 이름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다.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아웅산 폭발 테러는 당시 서석준 부총리를 포함한 대통령 순방 외교사절단 등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3명이 희생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행사장에 늦게 도착한 관계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급거 한국으로 귀환했다. 우리나라는 이때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인재들을 많이 잃었다. 35년 전 일이지만 이곳은 참담하고 아픈 우리 역사의 한 현장이다.
쉐다곤 파고다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파고다의 북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아웅산 추모공원의 한쪽에 대한민국 순국선열 추모비가 자리 잡고 있다. 추모비는 길이 9m, 높이 1.6m 크기에 78평 규모로 2014년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을 담아 건립됐다. 추모비는 미얀마 건국 이래 최초로 건립된 외국인 추모시설이다. 추모비가 세워진 곳은 미얀마의 독립영웅이자 정신적 지주인 아웅산 장군이 묻힌 순교자 묘역이 자리한 곳이다.
당시 외국인 추모시설 건립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우리 정부의 설득과 미얀마 정부의 협조로 추모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추모비는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순국한 만큼 하나의 큰 비석으로 설계되었고, 제주의 무덤 형식인 ‘산담’에서 착안해 ‘ㅁ’자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서로 다른 17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흰색 바닥은 17인의 순국자를 표현하고 있다.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기에 현재의 우리가 당당하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멀리 이국땅에서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곳을 스쳐가는 자 역시 안타까운 침묵으로만 일관한다. 저 멀리 미얀마 최대의 불교 사원인 쉐다곤 파고다가 고인들의 넋을 달래듯 황금빛의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만약 이때 우리가 폭탄 테러로 브레인들을 잃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발전했을까 상상해 본다.
최성호 _ 서울대학교 산림환경전공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에서 근무중이다. 페이스북 그룹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방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덕으로 품어 안는 성격으로, 업무를 추진할 때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 아시아산림협력기구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발전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꿈이 있다. (quercus1@hanmail.net)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