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조시
김 상 진
고 은
지난날 19년대 혹은 30년대
일제에 맞선 독립군 병사는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언제나 전사였다
무덤도 비목도 없는 전사였다
남만주 벌판
거기가 싸움터였고
싸움 뒤 까마귀 모여드는 저승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살을 노래해야 하는가
1975년 4월 수원
서울대 농대 축산학과 김상진의
할복자살을 노래해야 하는가
왜 죽었느냐
왜 죽었느냐
군은 핏덩어리 사체조차 차지할 수 없이
왜 그대의 죽음을 노래해야 하는가
저 지하에서 여러분의 진격을 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의 날
나 소리없는 갈채를
이 땅에 울려보내리라
이 말을 끝으로
그대는 품은 칼 뽑아
그대 배를 갈랐다
피 뿜어 쓰러진 그대는
어디론가 실려갔다
영결식은커녕
추모회도 막혀버렸다
2중3중의 인간 바리케이트
우리는 소리칠 뿐이었다
유신체제의 하늘은 황사바람으로
가득할 뿐
우리는 4월의 꽃이 아니라
4월의 피로 소리칠 뿐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갔다
또 1년이 갔다
이 땅의 젊은이들 가슴마다
그대의 넋으로 차 있었다
그 위대한 승리의 날이 언제인지
그 날이 무엇인지
어떤 술집에서도 그것을 모르는 술잔뿐이었다
오직 김상진 칠흑 같은 그대 이름뿐이었다
* 창비전작시 『만인보』(창작과 비평사) 13권, ‘70년대 사람들’에 나오는 김상진 열사에 관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