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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김상진 열사 추모시
신경림
네 목소리는 바람이 되었다.
어둠으로 덮인 온 나라의
강과 산과 마을을 누비며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고 있다
네가 흘린 피는 꽃이 되었다
말라 죽은 나뭇가지 위에 골목 진흙탕에
숨죽인 우리들의 팔뚝 위에
불뚝 불뚝 일어나는 숨결이 되었다
친구여
이 어두운 땅에도 봄이 왔구나
네 시체를 밟고 사월이 왔구나
네가 뿌린 피를 밟고
다시 사월이 왔구나
민주주의여, 아아, 자유여 정의여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사월이 왔구나 친구여
너의 죽음으로
잘린 우리들의 혀가 되살아나리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울리는
저 우렁찬 목소리로
막힌 우리들의 두 귀가 뚫리리라
눈 앞을 막은 안개가 걷히리라
이제 우리들의 목소리도 바람이 되었다
어둠을 뚫는 우렁찬 아우성이 되었다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는 노랫소리가 되었다
친구여 잘 가거라
너는 외롭지 않다
네 뒤를 따르는 피의 노랫소리가 들리리라
<*2014.12.2일, 정치평론가 김정남 선생은 다산칼럼에서 1974년 당시의 정치상황에 저항하여 할복 자살한 김상진 열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신경림 시인에게 청탁하여 사용한 사실을 밝히고 그 시를 처음으로 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