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김상진 열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68학번으 로, 1975년 4월 11일 수원에 있던 농대 교정에서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를 비판하는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 자결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태일 열사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분신한 지 4년 5개월만의 일이었으며, 김상진 열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학생 열사가 되었습니다.
1975년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공산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구실로 ‘긴급조치’ 라는 것을 발동하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가두고 고문과 폭행을 일삼던 때입니다. 그해 3월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동아일보』 기자 18명이 해고되어 길바닥에 내몰렸고, 4 월 8일에는 고려대학교에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어 교정에 군대가 진주했으며, 9일에는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 선고 하루 만에 처형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상진은 이 암울한 시국을 보며 몹시 분노하고 고뇌했습니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 잔디밭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국성토대회가 열렸습니다. 김상진은 이 집회에 연사로 등장해 직접 작성한 ‘양심선언문’을 읽는 도중 미리 준비했던 20센티미터 길이의 과도를 품안에서 꺼내, 왼쪽 하복부를 찌른 다음 온힘을 다해 위로 그어 올렸습 니다.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것이 김상진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수원도립병원으로 실려가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그는 다음 날인 12일 아침 8시 55분쯤 서울대학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영면했습니다. 김상진의 주검은 그날 밤 10시쯤 사망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장례식도 없이 서둘러 화장됐습니다.
김상진의 양심선언과 할복자결은 70년대 민주화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민주화투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비장함이 그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앞으로 민주화의 길이 목숨을 건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을 예시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독재정권 치하에서 수많은 귀중한 생명 이 쓰러져갔습니다
김상진 열사의 자결과 그의 비장한 양심선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특히 민주 진영에 새로운 각성의 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4월 15일 민주회복국민회의는 ‘김상진군의 의혈에 부쳐’ 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고, 4월 18일에는 가톨릭 학생지도 신부단 주관으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김상진 추도미사가 열렸습니다. 4월 19일 윤보선 전 대통령은 4·19혁명 15돌 기념사에서 김상진 기념동상 건립을 제안하고, 신민당은 새로 제정한 4·19민주국민상을 그의 영전에 바쳤습 니다. 4월 22일에는 민주회복국민회의가 경찰의 삼엄한 통제 속에 명동성당 내 가톨릭문화관에 서 김상진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범국민적인 김상진 기념사업을 벌일 것을 제안했습니다.
사건 직후 박정희 정권은 전국 대학에 위수령을 선포해 강제 휴교를 실시하고 긴급조치 9호를 발령했 습니다. 하지만 한 달 후인 5월 22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교정에서 뜻있는 학생 천여 명이 모여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긴급조치 9호 철폐’를 외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해 독재 정권을 다시 한 번 흔들었습니다. 이 시위로 인해 서울대학교 총장이 사임하고 故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故 박원순 서울시장, 원혜영 국회의원, 장선우 영화감독, 김정환 시인, 유 영표 매일경제신문 국장 등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29명의 학생들이 구속되고 제적당했습니 다. 이 사건은 훗날 학생운동사에서 ‘5·22’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상진 열사는 1949년 11월 25일 서울에서 아홉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혜화초등학교와 보성 중·고를 졸업하고 1968년 서울대 농대 축산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농대 안에 있던 동아리 ‘한얼’에서 활동하며 정치·철학·역사 등 다양한 독서로 사회현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안목을 키웠습니다. 그는 부모에게는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애먹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고 후배들에게는 부드럽고 포용력이 넓은 선배였습니다.
김상진 열사는 행정자치부에서 주관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이에 따라 2002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받았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정에는 열사의 뜻을 새긴 ‘김 상진 기념비’가 서 있으며, 옛 수원 교정 열사가 자결하신 자리에는 기념 표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열사 의거 20주년인 지난 1995년에는 김상진 평전 『긴 겨울 얼음을 뚫고』를 출간했 으며, 2003년에는 『시대의 불꽃 시리즈 4권 김상진』이 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