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선구자 김상진

조사

동지여!

 

그토록 어렵게 그토록 숨막히게 죽음으로 그대는 사랑을 완성했다. 척박한 이 터전을 붉디붉은 한 점 피로써 그대는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드디어는 그대 동학년 곰나루에서 비롯된 민중사의 현단계를 혼신의 힘으로 뛰어넘었다.

 

 

그렇다 동지여!

 

 

너의 죽음은 형편없는 슬픔이 아니라 우리에게 화려한 소식이 되었다. 우리네 기다리던 사람들, 그리워하며 굶주렸던 우리들에게 죽음과 맞바꾼, 생애로써 말하는 그 피투성이의 말, 부릅뜬 사랑은 이웃들의 깨알 같은 꿈을 쓰다듬는 넉넉한 웃음이 되었다. 슬퍼하기에는, 형제로서 동지로서 눈물을 흘리고만 앉았기에는, 그대는 삶과 싸움의 너무도 크낙한 용기를 일깨워주고 떠났기에, 우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구나.

 

 

네 당당한 말은 끝끝내 폭풍을 헤치고 선구자, 저 벌판을 앞서가는 자의 피의 노랫소리가 되어 저렇게 저렇게 먼저 간 사람들, 피끓는 사람들의 곁으로 우리를 불러 데려가게 하는구나. 지그시 눈을 감고 천지를 내닫는 말발굽 소리에 귀를 대이면 엎어지는 밥그릇, 짓밟히는 논밭, 문전옥토 다 빼앗기고 바람찬 만주벌판 헤매어야 했던, 말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가고, 아이깨나 낳을 년 갈보질 해야 했던, 총부리 칼날 아래 무수히 쓰러져 갔던 애비 에미의 피맺힌 통곡이 아! 가슴을 찢는다. 이조와 일제 침탈 36년을, 한많은 분단시대를 하늘도 없이 억울하게만 눌려 살아왔던 민중의, 그 고난과 폭정의 참담한 세월을 이기고 일어섰던 그날들의 함성이. 사무친 옛가락들이 아스라히 물밀려 오지 않는가!

 

 

학우여!

 

 

저 5월 향그러운 미풍에 실려 옛날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지 않느냐! 우리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이제 떨리는 팔아름으로 이 볼품없는 터전을 밟히고 잊혀진 풀을 부등켜 안자! 무너지고 쓰러지고 다시 강풍에 몸을 눕힌 민중의 얼룩진 꿈을, 새붉은 4월의 피를,

 

 

전태일과 김상진의 죽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리! 그것은 정녕 갚고 갚지 않으면 안 될 우리의 부채였다. 멍에였다. 죽을 수조차, 죽어서 모면할 길조차 없는 질곡이었다. 떨리는 눈길로 돌아보라! 매판독점자본과 독재권력 집단의 자기논리를 위하여 조국의 신식민지화도 서슴지 않는 이 처참한 백색 독재의 역사현실이 배태하는 모순들을,

 

 

학원과 교회, 언론은 타살되고 답십리, 중랑천, 면목동 등 판자촌 주민들은 이제 생존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정처없이 기댈 언덕 없이 벌판 저 켠 갈 곳 없는 어드메로 추방되고 있다.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다가오고 말못하는 가슴마다 응어리진 한과 분노가 쌓여 가는데 눈물 없이는 눈떠 바라볼 수 없는 이 누리에, 언제더냐 날 샐 녘은, 배추포기 춤추고 노래 부를 그날은 언제더냐, 김상진 동지가 외쳤듯이…….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산물임을, 두고두고 내려오는 역사의 가르침을 우리는 손에 손을 움켜쥐고 온몸으로 터득해야 하는 것들은 결코 강물에 꺾이지 않으며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언젠가는 모두 함께 일어나 덩실 춤을 추면서 맞이하리니.

 

아, 김상진 동지여, 믿으라!

다시금 터져 나올 그 눈물겨운 함성을, 그 위대한 민중의 승리를 

믿으라!

 

 

1975년 5월 22일
고 김상진 열사 장례 추진위원회